[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8) 送신축년, 迎임인년…우행호시(牛行虎視)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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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58) 送신축년, 迎임인년…우행호시(牛行虎視) 자세로
  • 이형로
  • 승인 2021.12.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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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눈 같은 날카로운 통찰력, 소걸음 같이 신중하고 끈기있게
- 주마간산(走馬看山), 완보득경(緩步得景)…빨리가면 놓치는 것 많고, 천천히 걸어야 제대로 눈에 들어와
해면(海眠)스님의 우행호시(牛行虎視) 작품(사진 위)와 도정(塗丁) 권상호의 작품 호시우보(虎視牛步). 호랑이의 눈초리처럼 날카로운 통찰력과 소걸음과 같은 신중하고 꾸준히 행한다는 뜻으로 신축년 소해를 보내고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으며 ‘호시우보’의 생활을 다짐해본다.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도 뭐가 그리 바빴는지 해놓은 것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다. 신축년(辛丑) 소띠해. 올초에는 소처럼 느긋하게 한걸음 한걸음 걸으리라(牛步千里, 우보천리) 다짐했건만, 여전히 조급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시절의 시간은 더디게만 갔다. 군 복무기간은 더욱 그랬다. 이제 나이드니, 진달래꽃•개나리꽃이 피는걸 보고 나면 어느덧 눈이 내리고 있다. 나이들어 빨리 가는 시간 느긋하게 늘려야 하는데, 오히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보려고 욕심부리고 있다.

昔日齷齪不足諺(석일악착부족언)
今朝放蕩思無涯(금조방탕사무애)
春風得意馬蹄跌(춘풍득의마제질)
一日看盡長安花(일일간진장안화)

지난날 아등바등 살았던건 자랑할건 없고,
이제야 자유로운 생각 거칠 것이 없구나.
봄기운 만끽하며 말 타고 내달리며,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돌아보았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맹교(孟郊, 751~814)가 지은 시 등과후(登科後)이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글을 지으며 청렴하게 살던중 어머니 뜻에 못이겨 41세의 나이에 과거에 응시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낙방하고 온갖 수모와 냉대를 받다가 5년 뒤인 46세때 급제했다.

과거급제 후 얼마나 기뻤겠는가. 주체할 수 없는 환희가 시구 전체를 감싸고 있다. 두어 번 낙방의 고배를 마셨지만 이제 지난날의 고생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도 꺼내기 싫다. 장안의 봄기운을 만끽하며 의기양양하게 말을 몰아 내달리듯 지금부터 거침없이 기개를 펼쳐보리라.

당나라 때는 과거급제한 진사를 위해 수도 장안의 유명 화원을 유람하는 행사가 있었다. 장안이 아무리 넓다해도 이 기세라면 하루아침에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준마를 타고 그냥 휙 둘러본다면야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건 제대로 된 꽃구경이 아니다.

시의 3,4구에서 '주마간화(走馬看花)'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꽃구경을 한다'는 뜻으로, 분주하고 어수선하여 사물을 대충 훑어보고 지나간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쓰고 있다. 요즘 ‘꽃*나무’의 글을 쓰면서 절실히 느낀 것인데, 꽃과 나무는 완상(玩賞)해야만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천천히 보고 또 느껴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데, 말을 타고 다니면서 어떻게 꽃을 감상한단 말인가.

스톤아트 작가 천영덕의 소(왼쪽)와 호랑이. 빨리 달리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고 천천히 걸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다(緩步得景 완보득경). 호랑이의 눈처럼 통찰력을 갖고 소걸음 같이 한걸음 한걸음씩 차근차근 나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조선 초기 세종의 투톱으로 당시 정국을 안정시킨 인물이 황희와 맹사성이다. 이들은 중종 때의 박수량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청백리로 꼽힌다. 청백리는 조선시대에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되어 청백리안(靑白吏案, 청백리대장)에 이름이 올랐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직 수행능력은 물론 청렴, 근검, 도덕, 경효, 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을 말한다.

여종들의 싸움에 갑순이 말도 옳고 을순이 말도 옳다고 한 황희를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 영의정이라는 위치에 있는 그가 가질 수 있는 포용력의 발효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황희에게 이런 일화가 있다면 맹사성은 소를 타고 다닌 인물로 유명하다.

맹사성이 좌의정일 때 고향인 온양에 어른들을 뵈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 현감들이 길을 막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소를 탄 허름한 차림의 맹사성을 포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현감들 앞으로 끌고가서야 비로소 좌의정 맹사성임이 밝혀졌다.

당시 정승이던 맹사성이 말을 탈 입장이 아니어서 소를 타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을까? 지금의 관용차격인 역마를 타고 갔으면 더욱 빨리 가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공사를 구분해 말 대신 소를 타고 가며 민의를 살펴보려 했던 것이다. 소와 함께 천천히 가면서 이소문 저얘기 들으면서 말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 우행호시(牛行虎視)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의 눈초리처럼 날카로운 통찰력과 소걸음과 같은 신중하고 꾸준히 행함'을 뜻하는 말이다. 호랑이는 어떤 사물을 볼 때 눈을 흘겨보거나 고개만 돌려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 전체를 돌려서 정면으로 눈에 불을 켜고 직시한다. 소는 길을 갈 때 결코 서두르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뚜벅뚜벅 한 걸음씩 꾸준히 걸어간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비에도 새겨져 있는 이 말은 본래 선가(禪家)의 법문이요 격언이다. 매사를 예리하게 판단해 신중하고 조심스레 행동하면서 정신을 엉뚱한 곳에 팔지말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 다시 말하면, 시대를 직시하는 지혜로운 눈(虎示見, 호시견)을 가지고 용맹정진하며 묻고 또 물어(牛步行) 마음자리를 찾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해는 저물어 가고 마침 내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 다. 60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에 급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빨리 가고 있는 시간이다. 소걸음 아니 달팽이 걸음이면 또 어떠랴. 빨리 달리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천천히 걸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다(緩步得景 완보득경). 호랑이 눈빛만 가지고 있으면 되겠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 1권을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8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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