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3) 춘재지두(春在枝頭), 도불원인(道不遠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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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3) 춘재지두(春在枝頭), 도불원인(道不遠人)
  • 이형로
  • 승인 2022.03.0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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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가지 끝에 봄이 있는데 봄을 찾겠다고 온 사방을 헤매
- 깨달음은 우리 마음, 가까운 곳에 있는 것…바깥, 먼데서 찾으려고 해
봄을 알리는 설중매(사진 위)와 해봉(海峰) 정필선의 ‘道不遠人(도불원인)’ 작품. 봄은 매화가지 끝에 벌써 와있는데 봄을 찾겠다고 온 사방을 헤매고 다니듯 깨달음은 마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우리는 바깥, 먼곳에서 찾으려고 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소한(小寒) 눈 속에서도 피는 매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는 매화풍(梅花風)이 불어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나 경칩이다. 이제 개나리와 진달래는 꽃봉우리를 언제 터뜨릴까 손 없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세월의 빠름은 싫으나 새봄이 오니 새삼 좋다.

일찍이 봄을 찾아 신발이 해어지도록 눈과 구름이 덮힌 산봉우리를 헤매다 마침내 뜰앞 매화가지에서 봄을 찾은 사람이 있었다. 중국 당나라의 비구니인 무진장(無盡藏, 생몰미상)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해종일
찾아 돌아다녔어도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짝이 다 해어지도록
구름 덮힌 산봉우리까지
헤매고 다녔네

지친 몸 이끌고 돌아오니
매화향 앞뜰 가득
이런,
봄은 벌써 매화 가지 끝에
방긋거리고 있었네!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芒鞵蹈遍隴頭雲(망혜도편롱두운)
歸來偶把梅花嗅(귀래우파매화후)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이 시는 요즘 시쳇말로 하면 그야말로 '간 보는'시다. 자신의 간을 보고, 그 맛을 알아낸 오도송(悟道頌)이다. 단순히 봄의 서정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봄을 '깨달음' 즉 불성(佛性)•진여(眞如)•진심(眞心)에 빗댄 구도의 어려움과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처절한 자기성찰의 노래다. 여기서 매화향의 역할은 바늘이다. 풍선이 한껏 부풀어 한 땀 콕 찔러주면 빵터지는 바늘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조선중기 문인화가 어몽룡의 묵매화. ‘매화가지 끝에 봄이 있다(春在枝頭)’는 무진장의 오도송을 소재로한 작품이다. 

이 시는 남송의 나대경(羅大經,1196~1242년)이 편찬한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작품이다. 나대경은 이 시를 '산뜻하고 속됨이 없는'(脫灑可喜 탈쇄가희) 경지에 이르렀다 극찬하고, 공자가 중용에서 강조한 '세상의 이치란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않다'(道不遠人 도불원인)라거나, 맹자가 주창한 '도는 가까운데 있는데 사람들은 멀리서 구하려 한다'(道在邇而求諸遠 도재이이구제원)란 속뜻과 유사하다고 평했다.

물론 유가와 불가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다르다. 진나라 이전의 유가에서 추구하는 도는 주로 자연의 이치 또는 우리 인간의 생활규범이라 한다면, 불가에서의 도는 불성이나 본성을 말한다. 나대경은 유학자라 유가식으로 평한 것이다.

무진장의 행적과 생몰연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혜능과의 한가닥 소중한 인연이 전해지고 있다. 선종의 제6조이며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인 혜능은 일자무식 나무꾼 출신이다. 어느날 시장에 나무 팔러 가다가 우연히 무진장이 열반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참뜻을 이해했다. 

무진장이 신기해서 묻자 혜능은 이렇게 대답한다.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오. 달을 보는데 손가락을 거칠 필요가 있겠소?"

혜능의 이 한 마디에 달이란 본체를 알기 위해서 손가락은 큰 걸림돌이라는 이치를 깨달은 무진장이었다. '달을 봤으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잊으라'는 이른바 견월망지(見月忘指)의 가르침이었다. 본질을 깨우쳤으면 수단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손가락을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우리는 달과 손가락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남송의 선승 보제(普濟, 1178~1253)는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손가락과 달'의 비유를 '사자와 개'로 바꿔 설명한다. '獅子咬人 韓盧逐塊(사자교인 한로축괴)'란 말이 그것으로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그 사람을 무나, 개는 흙덩이가 먹이인줄 알고 그것을 쫓는다'는 의미다. 한로는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명견으로 소문난 검은 사냥개다. 그러니까 말(言)만 쫓으면 한로가 되어버리고, 그 말의 참뜻을 알아들으면 사자가 된다는 의미다.

무진장의 시를 화제로 한 매화도가 조선에 있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어몽룡(魚夢龍,1566~?)의 대표작인 묵매화다. 이 작품은 굵은 선의 매화 등걸이 곧게 뻗어나는 간결한 구도와 단촐한 형태, 고담한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한다. 담묵으로 정갈하게 묘사한 가지, 윤곽선이 없는 몰골법으로 처리한 매화꽃의 형태, 농묵으로 간결하게 처리한 꽃술과 꽃받침의 표현은 조선 중기 묵매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원나라 비구니 묘담(妙湛)은 무진장의 오도송 가운데 '귀래우파매화후(歸來偶把梅花嗅)' 귀절을 ‘귀래소연매화후(歸來㗛撚梅花嗅)로 몇글자 바꿔 쓰기도 했다.

'귀래우파매화후‘는 직역하면 '돌아와 우연히 매화가지를 잡아 향기를 맡다'는 뜻이고, 묘담의  '귀래소연매화후’는 '돌아와 웃으며 매화향을 맡다'로 직역된다. 전체적인 의미에서 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연히 매화향을 맡으나, 웃으며 매화향을 맡으나 결국에는 매화 향기를 맡는다.

깨달음이란 우리의 마음밭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는 기를 쓰고 밖에서만 찾고있다. 가까운데 있는 것은 버리고 먼데서만 찾으려하고, 근본은 버리고 말단을 쫓으며, 안에서 찾을 생각은 전혀 하지않고 밖에서만 구하려하니, 결국엔 심력만 쏟고 제풀에 주저앉게 되는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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