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4) 근도여이(菫荼如飴) 고진감래(苦盡甘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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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4) 근도여이(菫荼如飴) 고진감래(苦盡甘來)
  • 이형로
  • 승인 2022.03.2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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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디쓴 씀바귀가 달게 느껴지는 이유
- 산전수전 겪으며 쓴 맛 본후에 진짜 단맛을 아는게 인생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씀바귀는 쓴 맛의 식물인데 냉이나 물엿보다 달다고한 노래들이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로 쓴 맛을 본 후, 그리고 산전수전을 다 겪고나면 진짜 단맛을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사진=이형로)

지난주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신혼여행을 따로 가지 못해, 나중에 제주에 가자고 한 아내와의 약속을 39년만에 지키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야자수가 우리를 반겼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용암이 굳어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 또한 푸른 바닷물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한라산 기슭 오름을 산책하다 보니 관광객인 듯한 여인네들이 쑥을 캐는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제주의 정감어린 돌담 밑에는 냉이, 민들레, 씀바귀가 한창이었다.

어릴 때 나물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콩나물이나 시금치도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잘 먹지 않았다. 고들빼기나 씀바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씀바귀 장아찌를 맛있다며 드시는 할머니가 이상할 정도였다. 나이가 어릴수록 미각이 예민해 성인보다 짠맛이나 신맛, 쓴맛을 몇 배나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김치나 채소를 싫어한다.

그저 쓰기만 할 뿐인 씀바귀나물을 좋아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미각이 둔해져 씀바귀의 참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이제 할머니 나이쯤 되니 쓴맛을 즐기게 됐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후에야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씀바귀는 옛부터 식용나물이었지만 그리 즐긴 먹거리는 아니었다. 3000년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경 곡풍(谷風)에는 젊은 아낙네가 쓰디쓴 마음을 씀바귀에 비유한 노래가 있다. 씀바귀의 쓴맛이 오히려 달다고까지 했다.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마음은 여러 갈래
멀리 나오기는 커녕 문안에서 박정하게 나를 전송했지요
누가 씀바귀 쓰다고 했나요 내게는 냉이처럼 달기만 한데
그대는 신혼 재미에 형님처럼 아우처럼 사이좋겠지

行道遲遲 中心有違(행도지지 중심유위)
不遠伊邇 薄送我畿(불원이이 박송아기)
誰謂荼苦 其甘如薺(수위고도 기감여제)
宴爾新昏 如兄如弟(연이신혼 여형여제)

이는 새로 작은마누라를 얻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본처가 원망에 가득차서 읊은 노래다. 신혼 재미에 푹 빠진 남편은 소박을 놓으면서 멀리 배웅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원망 투성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쓰디쓴 씀바귀가 오히려 냉이처럼 달다고 한다. 물론 반어법이지만, 배신당한 마음보다 쓴맛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지강(智崗) 나종진의 苦盡甘來(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으로 근도여이(菫荼如飴)도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다.

씀바귀가 달다고 노래한 이가 또 있다. 주태왕(周太王)이라 일컬어지는 고공단보로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시조다. 시경 대아 면(大雅 緜)에 나오는 노래다.

周原膴膴 菫荼如飴(주원무무 근도여이)
爰始爰謀 爰契我龜(원시원모 원계아귀)
曰止曰時 築室于玆(왈지왈시 축실우자)

주나라 들판은 기름져
제비꽃 씀바귀도 물엿처럼 달콤하네 
처음 계획하고 시작할 때 거북점을 쳐보고
머물러 살만하다 하여 이곳에 집을 지었네

주원(周原)은 주나라 들판이란 뜻으로 주나라 사람들이 중원에 터를 잡은 곳이다. 주족(周族)은 본래 섬서성 동남쪽 현재 횡수 유역인 칠수와 저수가 합류되는 강가에 살았다. 이웃 부족이 쳐들어오자 고공단보는 종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한다. 양산을 넘고 다시 서쪽으로 틀어 기산(岐山) 아래 도착했다. 그곳이 바로 황하 중하류의 기산현이다.

주족이 칠수와 저수 강가에 살 때는 토굴에서 살았다. 그러다 주원에 와서 거북점을 치니 그곳에 터를 잡으라는 점괘가 나온 모양이다. 마침 봄철이라 사방에는 씀바귀와 같은 봄나물이 풍성하다. 고생 끝이라 제비꽃과 씀바귀의 맛은 꿀보다 달다. 문자 그대로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진짜 쓴맛을 본 후라 씀바귀의 쓴맛은 물엿보다 더 달았을 것이다. 여기서 '근도여이(菫荼如飴)'란 고사성어가 유래한 것으로 근검절약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여기서 참고로 한마디. 근도여이에서 근(菫)은 제비꽃과 투구꽃 두 가지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투구꽃 즉 생약명으로 초오(草烏)라고 풀이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투구꽃의 뿌리에는 신경세포를 마비시키는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독성분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식용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뿌리 옆에 붙어나는 부자(附子)는 예전에 사약에도 쓰인 약재다. 살자고 한 고생 끝에 투구꽃 뿌리를 먹고 죽을 이유는 없다. 그러니 식용가능한 제비꽃으로 번역해야 옳다.

이 시에서도 씀바귀는 원래 무척 쓴 나물인데 고생을 하고나니 쓴 씀바귀마저 물엿처럼 달다고 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예전부터 씀바귀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나물이었다는 뜻이다. 

재미삼아 씀바귀 도(荼)자를 풀어보면, 풀 초(艹) 아래에 나머지 여(余)자로 이루어진 글자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여러 풀 가운데 고르고 남은 식용이 가능한 풀이라는 의미가 된다. 식용 가능한 나물 중에서 가장 꺼렸다는 뜻이니 씀바귀가 환영받지 못한 이유가 됨직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0년전부터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먹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민들레처럼 우리 주위에 흔한 씀바귀. 누구는 흔하다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씀씀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더불어 봄철 춘곤증을 예방하는 대표적인 나물로 꼽혀왔다. 특히 나이들어 식욕이 감퇴되었을 때 씀바귀의 쌉쌀한 맛은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사라고 하면 약의(藥醫)밖에 모르지만, 약의는 식의(食醫)에 미치지 못한다. 옛부터 우리들은 봄철에 씀바귀와 같은 쓴나물로 음식을 만들어 섭생을 한 셈이다. 씀바귀의 별명 중에는 '나귀채(那貴菜)'란 말이 있다. 번역하면 '어찌 이런 귀한 나물이!'라는 뜻이다.
민들레처럼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씀바귀다. 역시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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