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6) 윤석열정부…사공견관(司空見慣)과 시종여일(始終如一)
상태바
[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6) 윤석열정부…사공견관(司空見慣)과 시종여일(始終如一)
  • 이형로
  • 승인 2022.04.25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처음에 대단해 보이던 것도 점차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법
- 새정부, 사공견관 아닌 ‘처음과 끝이 같은’ 자세로 국정운영 하기를
'사공견관(司空見慣)은 처음엔 아름답고 대단하게 보이던 것도 점차 대수롭지 않고 심드렁해진다는 뜻이고, 시종여일(始終如一)은 처음과 끝이 같다는 말이다.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사공견관'보다는 '시종여일'의 마음과 자세로 국정을 운영하기를 바란다. (사진=이형로/ 인터넷캡처)

지난해는 이른 봄부터 날씨가 따뜻해서 봄꽃이 한꺼번에 피고 져 아쉬웠다. 올봄에는 차례를 지켜주니 다행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덕수궁에는 진달래가 가고 나니 병아리꽃, 황매화, 수수꽃다리(라일락)도 서서히 따라가고 있다. 이제는 철쭉과 모란이 한창이다.

이맘때 대한문 앞을 지나던 사람들 중에는 바람에 실려오는 수수꽃다리 향기에 이끌려 궁에 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퇴근하다 달콤한 향기에 유혹되어 들어와 아예 꽃대궐의 야경까지 감상하고 가는 이들도 있다. 관람객들로부터 "참 좋은 데 근무하십니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중국 역사에도 성품이 강직하고 성격이 꼬장꼬장한 인물이 많이 있지만,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842)만한 이는 드물다. 그는 천성적으로 부조리, 부정한 일을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왕숙문 등과 정치개혁을 꾀하였으나 수구세력의 힘이 워낙 드세어 실패했다.

유우석은 당시 권세가들의 부조리를 비판 혹은 풍자하는 글로 필화를 입어 귀양살이를 반복한 인물이다. 그가 세도가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지방관리인 소주 자사(蘇州 刺史)로 좌천됐을 때 사공(司空) 벼슬을 하던 이신(李紳)과 교유했다.

이신도 당무종때 재상으로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반대세력의 배척으로 얼마 못가 한직인 사공으로 밀려난 인물이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그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음주가무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즈음 이신은 평소 흠모하던 유우석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유우석이 이때의 감회를 노래한 시가 '증리사공기(贈李司空妓)'라는 제목으로 당나라 사람 맹계(孟啓)가 지은 ‘본사시 정감(本事詩 情感)’편에 전해진다.

高髻雲鬢宮樣妝 (고계운빈궁양장)
春風一曲杜韋娘 (춘풍일곡두위낭)
司空見慣渾閑事 (사공견관혼한사)
斷盡蘇州刺史腸 (단진소주자사장)

높은 쪽머리 구름머리한 궁녀처럼 꾸미고
봄바람에 '두위낭'이라는 노래 한곡 부르네
사공이야 흔히 보아 심드렁한 일이지만
이 소주 자사의 애간장은 다 끊어지는구려

'두위낭(杜韋娘)'은 당시 유명한 기녀인 동시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노래이기도 하다. 사공인 이신이 베푼 연회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 기녀가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이 시를 본 이신은 "그녀가 그리 예쁘면 데려가도 좋다"며 기녀를 유우석에게 양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소주 자사인 나조차 애간장이 끊어질 정도로 기녀가 아름다운데, 사공 당신은 얼마나 음주가무를 즐겼으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단 말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길래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이요. 이 시도 사실 유우석다운 풍자시다. 

여기에서 '사공견관(司空見慣)'이란 성어가 유래한다.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던 것이 점차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그런 심리기제(心理機制, Psychological Mechanism)를 이르는 말이다.

덕수궁은 병아리꽃, 황매화, 수수꽃다리(라일락)에 이어 지금 철쭉과 모란으로 말그대로 ‘울긋불굿 꽃대궐’ 모습이다. 처음 근무할 때는 아름다운 풍경에 탄성을 수없이 쏟아냈으나 이제는 익숙한 모습에 설레임이 희미해졌으니 ‘사공경관’이 따로 없다. (사진=이형로)

글머리에서 관람객이 "참 좋은 곳에서 근무하십니다"라는 말을 상기해보면, '사공견관'이란 말이 필자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처음에는 서울 대도시 한가운데의 덕수궁에 근무하며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사시사철 변하는 궁궐의 모습에 푹 빠져 틈나는대로 사진도 찍고 글도 쓰며 몇년을 지나고 나니 점차 심드렁해지고 있다. 행복에 겨워서다.

사공견관이란 이 말은 반드시 좋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하여 감각이 무뎌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정적이고 나쁜 상황에 점점 익숙해서 무덤덤해져가는 경우에도 쓰일 수 있다. 이를테면, 황당한 일을 수시로 겪다보면 그것에 익숙해져 나중에는 별 신경 쓰이지도 놀라지도 않는 사공견관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권 교체기인 요즘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아무쪼록 새정부에서도 참신하고 올바른 정책에 우리 국민들이 사공견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정부의 위정자들은 '첫 마음가짐은 쉽게 가질 수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다는건 매우 어려운 일(初心易得 始終難守 초심이득 시종난수)‘이라는 말,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한결같아야 한다(始終如一)'는 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선우협(鮮于浹, 1588~1653)은 유년기에 임진왜란을 겪고, 30대에 인조반정으로 한때는 산천초목까지 떨게한 권력자들조차 피바람에 복사꽃처럼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본 인물이다. 그때 그가 읊은 시조가 있다.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滿廷桃花)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려 하는구나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이 시조는 단순히 비바람에 떨어지는 복사꽃을 노래한 서정시가 아니다. 당시의 정치풍토를 읊은 지독한 풍자시다. 피어 있을 때는 모두가 우러러 보지만 결국은 지고마는 정치인들의 무상함과 연민을 읊은 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아이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는 상황이 결코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다. 그들도 한때는 봄을 장식한 꽃이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93, 102동 437호(신천동,더샵스타리버)
  • 대표전화 : 02-3775-4017
  • 팩스 : -
  • 베트남 총국 : 701, F7, tòa nhà Beautiful Saigon số 2 Nguyễn Khắc Viện, Phường Tân Phú, quận 7, TP.Hồ Chí Minh.
  • 베트남총국 전화 : +84 28 6270 1761
  • 법인명 : (주)인사이드비나
  • 제호 : 인사이드비나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16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14
  • 발행인 : 이현우
  • 편집인 : 장연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진
  • 인사이드비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사이드비나.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sidevina@insidevina.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