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7) 와유산수(臥遊山水), 이대관소(以大觀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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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7) 와유산수(臥遊山水), 이대관소(以大觀小)
  • 이형로
  • 승인 2022.05.0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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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명승 안방에 누워 감상할 수있는 세상… 정신세계, 이르지못할 곳 없어
- 큰 것으로 작은 것까지 보는 시각도 필요
중국 현대화가 리커란((李可染)의 ‘징회관도(澄懷觀道)’ 작품과 와유산수(臥遊山水). 요즘은 천하명승을 직접 가보지 못해도 안방에서 누워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다.  

요즘은 소파나 침대에 '편하게 누워' 손가락만 까딱하면 다양한 미디어로 세계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이라고 이런 생각을 안 했을리 없다. 다만 수단이 달랐을뿐 여러 고상한 방법이 있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의 성호전집에 와유첩발(臥遊帖跋)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있다. 와유첩(臥遊帖)이란 그림책을 보고 '와유(臥遊)'란 말을 풀이한 글이다.

臥遊者 身臥而神遊也 (와유자 신와이신유야)
神者心之靈 靈無不遠 (신자심지령 영무불원)
故光燭九垓 瞬息萬里 疑若不待於物 (고광촉구해 순식만리 의약불대어물)

와유(臥遊)라는 말은 몸은 누웠으나 정신이 노니는 것이다. 정신은 마음의 영(靈)이요, 영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 때문에 불빛처럼 세상을 비추어 순식간에 만리를 갈 수있기에, 사물에 기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와유란 직역하면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이니, '편안하게 누워 두루두루 구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워서 무엇을 구경했을까. 바로 방안에 걸린 그림속 산수(山水)를 감상한다는 뜻이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화가 종병(宗炳, 375~443)은 젊은 시절 천하명산을 돌아다니다 병들게 되자, 고향인 강릉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산수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어 묘안을 짰다. 산수를 그림으로 그려 방에 걸어두고 지난날 여행한 장면을 회상하는 방법이었다. 송사 종병전(宋史 宗炳傳)에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老病俱至 名山恐難遍睹 (노병구지 명산공난편도)
唯當澄懷觀道 臥以游之 (유당징회관도 와이유지)

늙어 병이 함께 오니 명산을 두루 구경하기는 글렀구나!
오직 마음을 닦고 도를 관조하기 위해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누워서 명산을 유람하리라.

여기에 나오는 징회관도(澄懷觀道), 와이유지(臥以游之)란 간단한 말이 후대 예술가들의 의식을 사로잡게 됐고, 와유산수(臥遊山水) 또는 와유강산(臥遊江山)이란 말이 유래했다. 줄여서  와유(臥游/臥遊)라 한다.

종병이 살던 시대는 끊임없는 전쟁과 권력투쟁으로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기였다. 이 때문에 당시의 지식인들은 불안한 현실보다는 평화로운 자연에서 삶의 위안을 찾았다. 종병 역시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온 까닭이기도 하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이러한 와유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움미술관에 소장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겸재는 여러차례 금강산을 유람하며 100여폭의 금강산 그림을 그렸는데 이가운데 금강전도는 국보 217호로 지정될만큼 걸작으로 꼽힌다. (사진=리움미술관)

조선 후기에는 산수 유람에 관한 시문을 모아 편찬한 와유록(臥遊錄)이 유행했다. 실제 유람에 참고하는 여행안내서 구실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시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람하는 용도로 많이 읽혔다. 종병 이후 '와유'라는 말이 그림뿐만 아니라 여행기까지 아우르는 의미로 확장돼 쓰인 셈이다.

서양화 가운데 특히 풍경화는 20세기이후 큐비즘(Cubism 입체파)이나 엥포르멜(Art informel 추상표현주의)이 성행하기 이전까지는 원근법이 근간이었다. 그렇다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어땠을까.

중국에 명대후기 동기창과 현대의 리커란(李可染)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과 지금의 정진용이 있다. 이들은 모두 서양의 원근법과는 달리 전통적인 '이대관소(以大觀小)'의 미학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큰 것으로 작은 것까지 본다'는 시각에서 세계를 해석한 것이다.

화가 자신을 세상을 굽어보는 거인 혹은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마음의 눈으로 대자연의 전경을 상하사방 자세히 살펴 한 폭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현상의 이면까지도 보려고한 피카소의 큐비즘과도 닮았다 할 수 있다.

겸재는 평생 여러차례 금강산을 유람하여 100여폭에 이르는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 59세에 그린 금강전도는 국보 제217호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걸작이다.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부감법(俯瞰法)을 써서 구도를 잡고 뾰족한 암봉은 수직준법(垂直皴法)으로, 나무숲이 우거진 토산은 미법(米法)으로 표현했다. 토산이 암산을 감싸안은 듯한 구성은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從今脚踏須今遍 爭似枕邊看不慳 종금각답수금편 쟁사침변간불간)’이라는 제시(題詩)를 달아 '와유'의 의미를 보태고 있다. ‘발로 밟아서 두루두루 다녀본다 하더라도, 어찌 베갯머리에서 이 그림을 마음껏 보는 것과 같겠는가‘라는 뜻이다.

정진용은 예술의 기본은 '해체'라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해체가 결여된 작품을 만드는 이는 예술적 뿌리가 약한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도 말한다. 

해체해서 쪼개더라도 겸재의 금강전도는 금강전도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강전도의 획 하나하나를 수평으로 늘어놔도 금강전도다. 해체는 동시에 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진용은 겸재의 금강전도를 해체해서 해와 달, 학, 소나무 등 십장생을 조합하여 '일월오악금강전도'라는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익의 말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정신이라면, 그 정신은 어디라도 갈 수가 있다. 비록 우리는 육체라는 굴레에 갇혀있지만 정신만은 온 세계, 아니 저 우주 끝까지 이르지 못할 곳이 없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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