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9) 부모찬스와 감택용서(闞澤傭書)•우각괘서(牛角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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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9) 부모찬스와 감택용서(闞澤傭書)•우각괘서(牛角掛書)
  • 이형로
  • 승인 2022.06.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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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가며 쇠뿔에 책 걸어놓고 읽을 만큼 시간 아껴가며 노력
- ‘금수저’라는 이유만으로 용이 되는 일 없어져야 하지만
- 노력은 하지않고 ‘수저타령’ 하고있는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감택용서(闞澤傭書)는 남에게 책을 베껴주고 연명하던 오나라 문신 감택이 이후엔 그 책을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아예 책을 외웠다는 것에서 유래했으며, 우각괘서(牛角掛書)는 길을 가면서 쇠뿔에 책을 걸어놓고 읽었다는 뜻으로 모두 지극한 노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개천승룡(開川昇龍)과 같은 성어이다. (사진=인터넷 캡처)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 부모찬스와 자녀 스펙쌓기, 고교생의 제1저자 등재 문제가 또 논란이 됐다. 금수저•흙수저와 '개천승룡(開川昇龍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중국에선 '물고기(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라는 뜻의 '어변성룡(魚變成龍)'이 등용문(登龍門)의 전설과 어우러져 민화 약리도(躍鯉圖) 혹은 어룡도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솔개가 매를 낳다(とんびが鷹を生む)'라는 속담도 같은 의미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문신인 감택(闞澤, ?~243)은 농부의 팔삭둥이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울음소리가 유난히 컸다는 그는 책을 읽고 공부하길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 가난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책을 베껴주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했다.

당시 종이는 발명되었지만 인쇄술은 발달하지 않아 책을 베껴주는 일을 하면서 종이와 붓을 공급받았다. 그는 책을 베낄 때마다 그 책을 다시는 볼 기회는 없다는 각오로 내용을 궁구하며 아예 책을 송두리째 외웠다

이렇게 어렵게 공부한 그는 경서는 물론 천문•역법에까지 능통한 학자가 되었다. 그후 손권이 표기장군이 되자 본격적으로 출사해 손권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상서가 되었다. 태자대부가 되어 태자를 가르치고, 조정에서는 경전에 의문점이 있으면 그에게 찾아와 자문했다. 말솜씨가 뛰어난 그는 적벽대전 때 황개(黃蓋)의 고육지계(苦肉之計) 밀서를 조조에게 전달해 계략을 성공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삼국지 오서(吳書)에 나오는 내용인데 여기에서 '감택이 책을 베끼며 공부했다'는 의미의 '감택용서(闞澤傭書)'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책을 베껴주는 일로 학문을 이루다'라는 용서성학(傭書成學)이란 말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어변성룡은 개천승룡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재산과 힘을 가진 부모를 만난 ‘금수저’라는 이유만으로 용이 되는 일은 사라져야한다. 그러나 스스로 노력은 하지않고 수저 핑계만 대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다. (사진=인터넷 캡처)

옛날이라고 개천에서 용이 흔하게 나온건 아니다. 신분에 따른 사회적 제도 때문에 지금보다 오히려 기회가 적었다. 한미한 집안보다 가진게 많은 집안에서 용이 나올 기회가 많았던 것이 요즘에 와서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기도 했던 것이다.

신당서(新唐書)의 이밀전(李密傳)에는 '소뿔에 책을 걸어놓고 읽는다'는 뜻의 '우각괘서(牛角掛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투리 시간도 아껴가며 노력한다는 의미다.

수나라 사람인 이밀(李密, 582~619)은 명문가 출신으로 소년시절에 조상의 음덕(蔭德)으로 수나라 양제의 궁정시위가 되었다. 양제는 이밀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측근인 우문술에게 명해 시위를 그만두게 했다. 우문술은 너는 시위나 하고 있기에는 재능이 아까우니 학문으로 현달하도록 격려했고, 이에 이밀은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쓰게 되었다.

어느날 학문이 깊은 학자인 포개(包愷)가 구산에 있다는걸 알고 그를 찾아갔다. 이밀은 길을 가면서 책을 읽을 방법이 없나 궁리하다가 갯버들로 안장을 엮어 소 등에 얹고 소뿔에 한서(漢書) 한 질을 걸었다. 이렇게 소를 타고 책을 읽으며 가는 이밀의 모습을 조정 대신 양소(楊素)가 보았다.

양소는 소를 타고 가며 책을 읽는 이밀의 기이한 모습에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느냐고 물었다. 이밀은 양소를 알아보고 예를 갖추며 항우전(項羽傳)을 읽고 있다고 대답했다. 양소는 그와 대화하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여겼다.

이밀의 일화는 이후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널리 회자되었다. 심지어 중국의 아동용 교과서인 삼자경(三字經)에서도 형설지공(螢雪之功)과 함께 인용되어 후학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고교생의 제1저자 논문 문제는 결국 부모의 인맥으로 참여하는 유형과 돈으로 이력을 채우는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후자의 유형이 더 많았고, 학교가 입시실적을 위해 조직적으로 장려한 적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2014년 생활기록부에 논문작성은 물론 외부의 수상이력마저 기재하지 못하게함으로써 해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이른바 ‘SKY’ 대학의 70%이상이 금수저라는 사실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2025년부터 도입될 고교학점제는 현재 논란이 되고있는 부모찬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육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국내 대입에서는 부모찬스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빈틈을 많이 메꾸려 하고있다. 그러니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며,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타령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감택이나 이밀처럼 노력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재산과 힘이 있는 부모를 만난 금수저라는 이유만으로 용이 되는 일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노력은 하지 않고 수저 핑계만 대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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