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4) 숙맥불변(菽麥不辨) 요동지시(遼東之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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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4) 숙맥불변(菽麥不辨) 요동지시(遼東之豕)
  • 이형로
  • 승인 2022.08.2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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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과 보리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음
- 개인의 무식은 죄가 아니지만 정치지도자는 달라…나라 어지러워져
菽麥不辨(숙맥불변)은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고 무식하다는 뜻으로 춘주좌전에서 유래한 성어다. 개인의 무식은 죄가 되지 않지만 정치지도자의 어리석음은 그 파장과 영향이 온 사회에 미친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진=인터넷 캡쳐)

어릴 때 비교적 쉬운 일을 못하거나 간단한 것도 모르면 할머니는 "이런 쑥맥을 봤나" 하시면서 당신이 직접 해주시거나 가르쳐 주시곤 했다. 당시에는 쑥맥이란 말이 그저 '바보'란 말처럼 손주에 대한 애정어린 말 정도로 여겼다.

훗날 쑥맥이 숙맥(菽麥)의 된소리라는 것과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사자성어의 준말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었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여공(厲公)은 대신 서동(胥童)을 총애해 그에게 조정 대권을 일임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서동의 횡정에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귀족인 난서(欒書)와 중항언(中行偃) 등이 먼저 서동을 살해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여공까지 독살했다. 그리고 양공의 증손자인 14살 어린애 주자를 왕위에 앉히니 그가 도공(悼公)이다.

몇살 위의 형이 있었지만 서열을 무시하고 어린 주자를 왕위에 앉힌 이유는 허수아비 왕을 옹립해 국정을 자신들이 주무르기 위해서였다. 이에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난서 등 쿠데타 세력들은 ‘사실 주자에게는 형이 있지만 지혜가 없어 콩과 보리조차 분간하지 못해 임금으로 세울 수 없었다(周子有兄而無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주자유형이무혜 불능변숙매 고불가립)’고 변명했다.

춘추좌전 성공(成公) 18년에 실린 글이다. 여기에서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하는 '숙맥불변'이란 성어가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이 말을 줄여 숙맥으로, 다시 쑥맥으로 변형돼 쓰이고 있는 것이다.

적미와 녹림의 난 등 농민봉기를 평정하고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의 휘하에 팽총(彭寵)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유수가 군사를 일으키자 군사 3000을 이끌고와 도왔으며, 한단 지역을 공격할 때 보급의 중책을 맡기도 했다. 이후 크고 작은 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 주군을 도와 개국을 이룬 공신)’의 반열에도 올랐다.

유수가 즉위한 뒤에도 천하는 전란의 여파로 뒤숭숭했다. 대장군 주부(朱浮)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려하자 어양 태수인 팽총이 반대하고 나섰다. 건국 공신인 팽총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군량을 확보해 반란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주부는 글을 보내 팽총을 꾸짖었다. 

요동지시(遼東之豕)'는 식견이 좁아 제 편한대로 해석한다는 뜻이고, 어로불변(魚魯不辨)은 어자와 노자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두 사자성어 모두 어리석고 무식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往時遼東有豕 生子白頭 (왕시요동유시 생자백두). 
異而獻之 行至河東 (이이헌지 행지하동)
見羣豕皆白 懷慙而還 (견군시개백 회참이환)

‘옛날에 요동의 어떤 돼지가 머리가 흰 새끼를 낳았다네
그는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까지 갔다네
그런데 그곳 돼지가 모두 하얀 것을 보고 부끄러워 돌아왔다네'

그대 역시 수많은 개국공신중 하나로 요동의 돼지와 다를 것 없으니 딴 생각 말라는 나무람이다. 이 일화에서 '요동지시(遼東之豕)'란 성어가 유래하였다. 직역하면 '요동의 돼지'란 뜻으로,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물건을 귀히 여기는 어리석은 태도를 일컫는다. 경험이 없거나 식견이 좁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알지못하고 제 편한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부의 이런 추상같은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팽총은 연왕(燕王)을 자칭하며 반기를 들다 2년후 토벌돼 끝내 역적으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남북조시대의 시문집인 문선 주부서(文選 朱浮書)와 사서인 후한서 주부전(後漢書 朱浮傳)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콩과 팥은 비슷하게 생겨 혼동할 수 있다고 백번 양보하더도, 콩과 보리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이조차 분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견문이 좁아 흰 돼지가 다른 곳에도 있다는걸 모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어쭙잖게 배워 물고기 어(魚)자와 노나라 로(魯)자를 혼동하는 것(魚魯不辨 어로불변)과도 다른 경우다.

우리는 세상사 모든 일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배워 알려고 노력한다. 공자도 한때는 한낱 촌부에게 벼•보리•콩•조•기장 등 '오곡을 분별할 줄 모른다'(五穀不分 오곡불분)고 무시당한 적이 있었다.(논어 미자편). 이는 글만 읽어 세상 물정에 어둡고, 살아가는데 실용지식이 없는 선비들을 비꼬아서 한 말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공자 자신은 의문이 들거나 배울 점이 있으면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묻고(不恥下問 불치하문) 배우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성현이라는 공자도 이런 태도로 배움에 힘썼거늘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면 주위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 이것이 아니라면 책을 읽는 방법도 있다. 하루에 술 마실 시간 30분만 절약해도 한달에 한권, 일년이면 12권, 10년이면 12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적어도 '술독속의 초파리'(甕裏醯鷄 옹리혜계)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양이다. 식견이 좁다면 넓히면 될 일이다.

개인의 무식은 죄가 되지는 않지만 위정자라면 그 경우가 다르다. 우리 속담에 '무식한 도깨비는 부작(부적)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속된 말로 하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다. 정치지도자가 무식해서 용감하면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민들은 피곤해진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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