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5) 인플레이션과 항산항심(恒産恒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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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5) 인플레이션과 항산항심(恒産恒心)
  • 이형로
  • 승인 2022.09.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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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대기를 모르고(天井不知 천정부지) 오르는 물가
- ‘등 따습고 배부른 것’ 모두의 바램…세계적 추세 이유로 서민고통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글로벌 인플레이션 여파로 우리나라 물가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고물가는 세계적 추세여서 어쩔 수없다는 것은 '정신승리' 일 뿐이며 모든 사람의 바램은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이다. 정부는 서민들의 고통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사진=인터넷캡쳐)

전세계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난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름값에서부터 외식은 물론이고 과일•채소 등 장바구니 물가까지 안오른게 없으며, 23년만에 최고치 상승이라고 한다. 이럴 때 흔히 ‘물가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올랐다’라는 말을 한다. '천정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물가가 치솟았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른다'는 말이다.

본래 천정(天井)이란 손자병법에서는 사방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분지 같은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명청(明淸)이후에는 중국의 전통 주택양식인 사합원(四合院) 같은 곳에서 방과 방 사이 혹은 방과 주위를 두르고 있는 담장사이에 채광을 위해 노출시킨 공간을 가리키는 건축 용어로 쓰이고 있다.

우리의 천장(天障)이라는 말을 중국에선 천화(天花)라고 한다. 사찰이나 궁전의 화려한 장식 천장을 우리나라에선 특별히 보개천장(寶蓋天障)이라 하며 중국에선 조정(藻井)이라 한다. 물론 궁전이라 해서 모두 조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등급이 존귀하거나 황제가 자주가는 주요 궁전에만 설치할 수 있었다.

조(藻)는 물속에서 서식하는 수초의 총칭으로 물을 상징한다. 정(井)은 천문학에서 28수(宿)의 하나인 정수(井宿)를 가리키는데 물이 모이는 곳으로 소화(消火)를 관장해서 그 뜻을 취해 붙여진 이름이다. 청대이후에는 용이 주 장식이 되어 용정(龍井)이라고 했다.

10년전 덕수궁에 근무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한 관람객이 천장을 살펴보더니 왜 경복궁 근정전 용의 발톱은 7개인 칠조룡(七爪龍)인데 중화전은 발톱이 5개인 오조룡(五七龍)이냐고 물었다. 사실 당시에는 경복궁 근정전 용의 발톱이 7개인 줄 몰랐다.

경복궁 근정전 보개천장의 7조룡. 

1863년 흥선대원군은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보위에 오르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년 뒤인 1865년에 궁핍한 나라살림에도 불구하고 척신의 발호로 떨어질대로 떨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경복궁 중건을 추진했다.

그후 고종은 1897년 10월12일 중국의 것이 아닌 독자적인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쓰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붉은색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황룡포를 입었다. 또한 근정전을 중건하면서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7개의 발톱을 가진 칠조룡을 새겨넣어 당당하게 황제임을 드러냈다. 표면적으로나마 대한제국은 사대(事大)를 과감하게 포기했던 것이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은 그에 걸맞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겉에서 보기에 정면이 5칸, 측면이 5칸해서 25칸이나 되는데다 지붕도 중층으로 되어있다. 천장의 중앙에는 구름사이에서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이른바 쌍룡희주(雙龍戱珠)다.

7가지 동물이 가지고있는 최고의 무기를 모두 갖춘 상상의 동물인 용은 그 조화능력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믿어져왔다. 용의 이런 성격 때문에 옛부터 임금을 용으로 비유하였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 임금이 타는 수레나 가마를 용여(龍輿), 공식행사 때 입는 옷을 곤룡포, 임금의 지위를 용위라 했다.

중국에서도 황제의 용 발톱은 보통 다섯개였으며 7개인 경우가 드물었다. 4개는 제후국인 왕을 상징하고, 7개인 용은 말할 것도 없이 황제를, 그것도 특별히 격을 높여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의 덕수궁 중화전의 용 발톱도 다섯인데 유독 근정전의 용 발톱은 일곱이다. 일제 시기에 찍은 사진을 보아도 일곱임이 확인된다.

보개천장의 7조룡은 근정전 이외에도 원구단 황궁우와 창덕궁 신선원전에도 보인다. 두 건물은 대한제국 선포이후 세워진 건물이라 이해가 되나 현재 동국대학교 안에 있는 정각원 천장의 주룡(朱龍)도 칠조룡이다. 정각원은 원래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었다. 광해군에 의해 창건될 당시에는 경덕궁의 융정전이었던 숭정전은 인조이후 바뀐 이름으로 6차례나 수리됐다.  그러다 대한제국 선포이후 근정전처럼 7조룡으로 천장을 장엄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참고로 덕수궁 중화문, 중화전 상하 월대의 답도에는 현존 궁궐중 유일하게 용으로 조각되어 있다. 특히 왼쪽의 용은 4조룡이고 오른쪽의 용은 5조룡이다. 4조룡은 조선을 상징하고, 5조룡은 대한제국을 상징한다. 이 두 용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대한제국 개혁의 이념인 
구본신참(舊本新參, 옛 것은 바탕으로 삼고, 새로운 것은 참작한다)을 상징하고 있다.

덕수궁 답도의 사조룡(왼쪽)과 5조룡

북송의 손승(孫升, 1038~1099)이 지은 손공담포(孫公談圃)라는 책에 "고려는 거란에 굴복하여 거란 사신이 올 때마다 고려 전각의 용마루를 장식한 치미(鴟尾)를 모두 잠시 철거했다"는 구절이 있다. 고려 조정에서 거란의 눈치를 보느라 사신이 오면 전각의 지붕을 장식한 치미를 임시로 모두 치웠다는 말이다. 치미라는 지붕장식은 웅장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상징하고 있어 자칫 거란 사신의 심기를 거스릴 수 있다는 고려 조정의 불편한 배려다.

건물 외부를 장엄하게 장식하니 사람들의 눈에 확실히 띄는건 당연하다. 치미는 단순히 건물의 외부만을 장식했을 뿐인데도 강대국의 신경을 써야했다. 하물며 황제를 상징하는 용 발톱의 갯수는 어떠했겠는가. 더구나 중국 황제도 잘 쓰지않는 7조룡 아닌가?

경복궁 근정전 높이는 약 22미터로 아파트 7~8층에 해당한다. 그러니 보개천장의 용의 발톱 갯수는 육안으로 도저히 식별이 안된다. 청나라에서 사신이 와도 임시로나마 떼어내거나 가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심으로는 "야 이놈들아, 우린 칠조룡을 보유한 나라다!"라며 자존감을 가졌을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정신승리'라 할 수 있다.

천장이 높아 용의 발톱이 5개인지 7개인지 모르니까 가능한 서글픈 정신승리다. 위정자들에게는 이러한 정신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일단 '등이 따습고 배가 불러야 자존감이고 자부심이고 뭐고 마음에 와닿는다'(恒産恒心 항산항심). 요즘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삼고에 민생경제가 어렵다.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라는 이유로 서민들의 장바구니 고물가 어려움을 소홀히 하지 않기 바란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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