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6) 정치세태와 세외도원(世外桃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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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6) 정치세태와 세외도원(世外桃源)
  • 이형로
  • 승인 2022.10.0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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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어지러울수록 무릉도원•이상국가 지향심리 강해져
- 현대사회서 이상향 존재하기 어려워…공정과 상식 통해야 그나마 한발짝 가까워질 것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는 동양에서 무릉도원이란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은 이상향을 그리게 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상향이 존재하기란 사실 어렵다. 그나마 공정과 상식이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사회가 돼야 이상향에 한발짝 가까워질 것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옛부터 왕조 교체기나 전쟁이 잦은 시기 등과 같이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사이비 도사들이 수없이 출몰했다. 백성들의 삶이 고달픈 틈을 타고 혹세무민하는 세력들이 득세하곤 하였다. 중국 원말명초에는 기록에 남아있는 사이비 도사만도 무려 수백명에 이른다.

그럴 때 백성들은 어지러운 현실세계를 벗어난 유토피아를 그리게 된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토마스 모어가 1516년 라틴어로 쓴 소설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의 뜻 자체는 그리스어 Uto와 pia의 합성어로 영어로는 Not-Place가 된다. 즉 현실세계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유토피아는 동양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역시 이상향을 뜻하는 말로 도원경(桃源境), 도원향(桃源鄕)이라고도 한다. 중국 남북조시대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말이다.

한 어부가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흘러간 끝에, 외부세계의 역사와 궤를 달리하며 살아가는 어느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어부는 도화원 사람들의 환대속에 며칠을 머물다 다시 바깥세계로 나왔다는 대강의 줄거리다.

무릉도원은 정부의 간섭은 물론 세금과 부역이 없고 속세와 떨어져있는 별천지란 뜻으로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고도 한다. 이 무릉도원은 주(朱)씨와 진(陳)씨가 이룬 집성촌이었다. 옛부터 두 집안이 인연을 맺어 내려와 서로 사돈이 된다는 뜻인 '주진지의(朱陳之誼)를 맺는다'라는 성어가 여기서 유래한다.

도화원기는 남북조시대 왕조 교체기의 문란하고 암담한 시대를 살았던 도연명이 현실에 대한 실망에서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이백의 산중문답. (사진=인터넷 캡쳐)

노장이 추구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세계를 밑바탕으로 하고, 오랜 은거생활 가운데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살려 그려낸 도화원기는 그후 동양적인 유토피아의 전형이 되었다. 이를 모티프로 한 작품중 첫 손가락을 꼽으라면 당연히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일 것이다.

'그대는 왜
깊은 산에 사는가
웃으며 대답 않으니
내 마음 저절로 한가로워라
강물따라 복사꽃 저 멀리 떠가니
이곳은 인간세상 아닌 별천지라네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시의 키센텐스인 구안(句眼)은 역시 둘째 구다. 당신은 이 깊은 산중에서 왜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해야한단 말인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지만 내 마음은 늘 여유롭다. 달리 뭐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그런걸.

도연명과 이백의 정신세계를 믹스해서 현대적으로 해석 승화시킨 시가 우리나라에 있다. 바로 김상용(金尙鎔, 1902~1951)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그것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시인은 무릉도원이 남쪽에 있다고 생각해서 자기가 사는 띠집의 창문을 남쪽으로 냈으면 한다. 그리고 마흔한살에 식솔과 함께 고향에 은거한 도연명의 삶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술을 좋아하던 도연명이지만 허구헌날 술타령만 했겠는가. 가족과 함께 산비탈 한뙈기 밭이나마 일구다가 남은 시간에 달에게 술 한잔 권커니 잣거니하며 글을 지었으리라.

보통 이 시는 전원시라 하지만 김상용 시인이 도연명이 꿈꾸었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이백의 '笑而不答心自閑'에 대한 한층 고차원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이백의 웃음엔 어딘지 쓸쓸함이 배어있다면 김상용은 세상을 달관한 듯이 호탕하게 웃고있다. 이백은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이상향을 꿈꾸었다면 김상용은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삶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와 달리 한층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위정자들이 아무리 정치를 잘하더라도 모든 국민들이 만족할 수는 없다. 현실세계에서의 무릉도원, 세외도원, 이상국가는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도 공정과 상식, 정의와 자유가 특정세력만이 아닌 모두에게 적용된다면 그나마 이상향에 한발짝 가까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은 위정자 한두 사람이나 특정 정치집단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의 뜻과 궤를 같이해야 가능해진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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