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7) 윤석열 대통령과 불비불명(不飛不鳴) 심장불로(深藏不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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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7) 윤석열 대통령과 불비불명(不飛不鳴) 심장불로(深藏不露)
  • 이형로
  • 승인 2022.10.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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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일을 위해 뜻을 깊이 감추고 때를 기다렸던 지도자
- 임기 5년중 5개월 짧은 시간 아냐…숨겨져 있던 본모습 있다면 이제 드러내 보여줘야
심장불로(心藏不露), 불비불명(不飛不鳴)은 중국 춘추시대 초장왕(楚莊王) 통치행태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속내를 깊이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5개월을 넘겼다. 임기 5년의 대통령에게 5개월은 짧은 시간이 아닌만큼 윤 대통령에게 숨겨져있던 본모습이 있다면 이제는 드러내 보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할 때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몇년전 근무시간이 되어 후문방향으로 가다가 우연히 통제실 직원과 관리반 여사와의 대화를 듣게 됐다. 통제실 직원은 자기가 성북동 산꼭대기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으며, 'Tom & Judy'라는 미국식 영어책으로 배웠다고 한다. '어, 나도 그 중학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글친구가 된 직원이지만 나이를 따져보면 분명히 필자의 후배가 된다. 나중의 재미를 위해 몇년간 숨긴 사실을 알게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하다.

필자가 별것도 아닌 비밀을 '마음깊이 숨기고 드러내지 않다(心藏不露 심장불로)'가 칼럼을 통해 밝히고 있지만, 역사에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는 따로 있다. 바로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의 이야기다.

초장왕(楚莊王, ?~BC 591)은 부친인 목왕이 급사하여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선왕 때부터 불안정한 왕권과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과 어린 나이 때문에 그의 자리는 매우 불안정했다. 게다가 재위 초반에 일어난 홍수•냉해로 인한 기근까지 발생하여 민심이 흉흉해졌으며, 반란군에게 수도가 함락돼 감금됐다가 구사일생으로 풀려나는 등 고난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국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장왕은 모든 업무를 중단, 조회폐지와 더불어 매일 주색에 빠졌다. 몇몇 대신들이 간언했지만, 오히려 장왕은 "간언을 하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며 으름장을 놨다. 이런 생활이 3년이나 지속되면서 국정은 간신들의 천하요, 국력은 나날이 쇠약해지게 되었다.

장왕의 방탕한 생활을 보다 못한 오거(伍擧)는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 간언을 올린다. "초나라 언덕에 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는데, 3년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三年不飛又不鳴 삼년불비우불명). 이 새가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그러자 장왕은, "그 새는 날지 않았으나 한번 날면 높은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차조불비즉이 일비충천), 울지 않았으나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요(不鳴則已 一鳴驚人 불명즉이 일명경인). 경의 뜻은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시오."

그 뒤로 한참이 지나도록 장왕은 여전히 향락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오거의 친구이자 또 다른 충신인 대부 소종(蘇從)이 목숨을 걸고 간언을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장왕은 지금까지 하던 행태를 접고 소종과 오거를 불러들여 국정을 논하게 된다.

우선 그동안 아부만을 일삼던 간신 무리들을 쳐내고 나라의 기강을 세웠다. 장왕은 당시 나라가 너무 혼탁하고 충신과 간신을 구분할 수 없게되자, 일부러 3년간 사치와 향락을 즐겨 옥석을 가리고자 했던 것이다. 간신들을 깔끔히 처단한 장왕은 이후 오거와 소종의 도움으로 춘추오패의 당당한 반열에 들게 된다.

이 고사는 한비자 유로(喩老)편과 여씨춘추 중언(重言)편 그리고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 등 여러 전적에 실려있다. 사기에는 초장왕이 제나라 위왕(威王)으로, 오거가 순우곤(淳于髡)으로 등장한다. 이로 미뤄보면 춘추시대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초장왕이나 제위왕에 빗댄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어쨌든 이 고사에서 권력자인 군주나 개인이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속내나 가진 것을 깊이 감춘다'는 심장불로(深藏不露), '큰일을 하기위해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사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는 '훌륭한 상인은 깊이 감춰두고 아무것도 없는 듯이 한다. 군자는 덕이 가득해도 겉보기에는 바보같다'(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容貌若愚 양고심장약허 군자성덕용모약우)라는 말이 있다. 바로 노자 제45장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을 풀이한 말이기도 하다.

후한의 복파장군 마원(馬援)은 경박한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는 조카들이 걱정이 되어 전장에서도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용백고와 같은 중후하고 겸손한 사람을 본받으면 그 사람과 같이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근직(謹直)한 선비가 될 것이다. 즉 '고니를 새기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집오리와 비슷하게는 될 것이다(刻鵠類鶩 각곡유목)'. 그러나 두계량의 흉내를 내다가 이루지 못하면 천하의 경박한 자가 될 것이다. 마치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는 것과 같다(畵虎類狗 화호유구)'. 너희는 이 말을 언제나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라."

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일일일망언(一日一妄言)’, ‘일일일사고(一日一事故)’ 등 듣기 민망한 별명들이 나오고 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귀여운(?) 별명이 그나마 괜찮은 정도다.

종신직인 초장왕이나 제위왕에게 3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5년 임기인 선출직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5개월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로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있다. 전 정권 탓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숨겨져있던 본모습이 있다면 이제 드러내 보여야 할 때다. ‘처음 해보는 대통령’이란 핑계는 접고, 한번 하늘 높이 날고 울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으면 한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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