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8) 금구환주(金龜換酒) 망년지교(忘年之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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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78) 금구환주(金龜換酒) 망년지교(忘年之交)
  • 이형로
  • 승인 2022.11.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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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살 나이차 뛰어넘은 하지장-이백의 친교
- 어린 이백의 문재(文才) 알아보고 금거북이 맡겨놓고 술대접
金龜換酒(금구환주)와 忘年之友(망년지우). 금구환주는 당나라 문사인 하지장이 나이어린 이백의 글재주에 반해 술집에 데려가 허리춤에 찬 금거북이를 맡겨놓고 술대접을 했다는데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며, 망년지우는 이같이 나이차를 뛰어넘는 벗이나 친교를 말한다. (사진=인터넷 캡쳐)

엊그제 새벽잠에서 깨어나 메모할 일이 있어 휴대전화를 켜니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미국에 이민가서 살고있는 친구에게 온 것이다. 서울의 대학동기가 보낸 것이라며 '고향에 돌아와'라는 제목으로 당시(唐詩)라고만 되어있는 번역시였는데 누구의 시며 원문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이었다. 읽어보니 당나라 하지장(何之章, 659~744)의 시 ‘回鄕偶書(회향우서)’였다.

少小離家老大回 (소소리가노대회)
鄕音無改鬢毛衰 (향음무개빈모쇠)
兒童相見不相識 (아동상견부상식)
笑問客從何處來 (소문객종하처래)

하지장의 워낙 유명한 시라 원문을 바로 알려주었지만, 누구의 번역인지 셋째와 넷째 구가 '사람들은 날 보고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오신 객인가 비웃듯 물어보네'라고 풀이된 것이 거슬렸다. 즉시 '아이들은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오셨냐고 웃으며 묻네'라 번역해서 보냈다. 

그런데 '兒童(아동)'이란 시어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장이 젊어서 고향을 떠나 여든 살이 넘어 갔으니 당시 아이들이 그를 몰라보는건 당연하다. 당연한 사실을 천금같이 귀중한 시어까지 낭비해가며 시를 짓는다? 만일 그랬다면 시로서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게다가 천하의 하지장이 말이다. 어릴 때 친구 그러니까 죽마고우라 해석해야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을 것이다. 결국 다음과 같이 다시 번역해서 보내주었다.

<고향에 돌아와>
어려서 집 떠나 나이들어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 그대론대 귀밑머리는 세었네
어릴적 친구 서로 보고도 몰라봐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 웃으며 묻네

이 시는 하지장이 35세때 진사시험에 붙어 고향인 월주 영흥을 떠나 86세에 돌아와 지은 ‘회향우서이수(回鄕偶書二首)’ 가운데 첫번째 시다. 제목에서 '우(偶)'는 고향에 돌아와 '그냥 우연히' 지어봤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러나왔다는 뜻도 있다. 평이하지만 정교한 시어로 독특한 풍격(風格)을 보여주는 시다.

하지장은 왕발, 낙빈왕, 송지문과 더불어 '初唐四傑(초당사걸)'로 중국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학문은 물론 언변도 좋고 글과 글씨, 특히 초서와 예서에 뛰어났으며 당 현종의 신임을 받아 노년에 이르도록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성격은 솔직 담백했으며 술을 즐겨 마신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루는 아교같은 누런 콧물이 몇 대접 흐르자, 의원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렇다고 진단했지만 개의치 않고 여전히 '낮이고 밤이고 취했다'(日飮月醉 일음월취)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현대 중국화가 고병흠(顧炳鑫)의 금구환주도. 

한편 어린 이백은 청운의 꿈을 안고 수도인 장안에 왔으나, 사고무친인 소년은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장안의 큰 도관인 자극궁에서 하지장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거기서 하지장을 어렵사리 만난 이백은 촉도난(蜀道難), 오서곡(烏棲曲) 등 자작시를 보여주었다.

이백의 작품을 읽어본 하지장은 그 자리에서 이백을 '하늘에서 인간세상에 귀양온 신선'이란 뜻의 '天上謫仙人(천상적선인)'이란 멋들어진 별명을 붙여주고 장안의 문사들에게 널리 소개해 줬다. 후에 이백이 적선(謫仙)이란 별칭으로 불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백의 글재주와 호방한 성격이 마음에 든 하지장은 다짜고짜 그의 손을 이끌고 술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술값을 미처 챙기지 못한 하지장은 허리춤의 금거북이(金龜)를 풀어 주모에게 맡기고 어린 이백과 밤을 새워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로 '金龜換酒(금구환주)'라는 고사다. 

금구는 고관이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니 지금으로 치자면 공무원증을 맡기고 술을 마셨다는 얘기다. 이후로 하지장은 이백이 자신보다 뛰어난 대시인이 될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후견인을 자처했다.

하지장과 42살이라는 나이 차가 있음에도 이백이 후에 쓴 시를 보면 '나이와는 무관하게 격의없는 친구'(忘年之友 망년지우) 같았다고 한다. 말년에 절강성 사명산에 은거하다 소나무 밑에 묻힌 하지장을 위해 이백은 그를 추억하는 시 두수를 지었다. '대주억하감이수'(對酒憶賀監二首)가 바로 그것이다. 하감이란 하지장이 궁중도서관장인 비서감을 역임해서 붙여진 관명이다.

이백은 이 시의 서문에서 하지장이 어린 자신에게 적선이란 별명을 붙여준 이야기며, 고관의 신분증인 금거북을 술집에 맡기고 밤새워 술을 마셨다는 금구환주의 아름다운 인연을 떠올리며 지장을 기렸다.

하지장은 53살 차이가 나는 시성 두보와도 인연이 깊었다. 두보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하지장을 여양왕, 이적지, 최종지, 소진, 이백, 장욱, 초수 등과 더불어 '醉八仙(취팔선)'이라 칭송하며 이들 가운데 첫째로 꼽았다. 

이때 두보는 하지장이 ‘술을 마시고 말을 타도 배를 탄 듯 편하게 여겼으며(知章騎馬似乘船 지장기마사승선), 술에 취해 어지러워 우물에 빠져도 그냥 바닥에서 잠을 잘 수 있는(眼花落井水底眠 안화낙정수저면)’ 인물로 묘사했다.

하지장은 술을 좋아해서 마시면 대취할 때까지 마시곤 했지만, 이백이나 두보와 같은 인물들을 알아보고 천거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바는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람은 술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술만 마시면 개차반’이란 말이 있듯 술을 마시고 잘못된 언행으로 주변을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의 그런 행동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좋은 술을 마시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마시라. 우리 인간에 대한 모독이요, 술에 대한 모독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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