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41) 독자모델 국산차1호 ‘포니’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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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41) 독자모델 국산차1호 ‘포니’의 무한도전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전 SK그룹 사장)
  • 승인 2022.12.0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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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력없던 상태…정주영•정세영 콤비, 2년만에 ‘무에서 유’ 신화 창조
- 창립 10년도 안돼 독자모델 개발, 30만대 수출…세계 자동차산업사에 유례없어
독자모델 국산차 1호인 현대자동차의 포니와 생전의 정세영 회장이 포니를 소개하는 모습.  설립된지 채 10년도 안된 일천한 업력의 자동차회사가 독자모델을 개발하고, 출시 10년만에 30만대 넘게 수출한 사례는 세계 자동차산업 200년 역사에 유례없는 일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정세영 회장 콤비가 이끄는 현대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화를 썼다. (사진=현대자동차)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자동차 첫 독자모델 개발을 선언하자 모두가 ‘무모한 도박’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와 정 명예회장의 독대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미 대사는 정 명예회장에게 “독자개발을 포기하고 미국 자동차(포드) 조립생산을 하면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우리가 국토의 혈관인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는데 좋은 피가 흐르도록 해야하지 않겠냐”며 “포기할 수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 독자모델 개발없이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하청기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결단이었다.
 
정 명예회장과 고 정세영 현대차 회장은 독자모델 개발을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현대차의 모든 임직원들이 한결같이 새로운 신화, 새로운 미래를 열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가득찼다. 하지만 조립공정만 해온 현대차에게 기술력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현대차는 신차생산을 위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종합 자동차공장 건설이 확정된 직후인 1973년말부터 1975년말까지 기술요원 200여명을 뽑아 해외 기술제휴 기업에 보냈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이상 기술연수를 받도록 했다. 

국내에서는 연 2000여명의 기능공이 직종별, 단계별 기술훈련을 이수하도록 했다. 기술제휴 기업들은 계약에 따라 30여명의 외국인 기술자를 국내에 파견해 기술용역을 제공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부문에서는 외국회사에 용역을 발주하거나 기술연수를 의뢰해 훈련시켰다. 

포니2CX의 국내판매를 알리는 신문광고. 최초의 독자모델 국산차인 포니는 1975년 출시하자마자 국내자동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만큼 인기를 끌었고, 출시 10년만에 해외 66개국에 30만대 이상을 수출하며 오늘날 현대자동차가 세계적 자동차회사로 우뚝 서는 토대가 됐다. (사진=현대자동차) 

기술확보가 어느정도 이뤄진 이후인 1975년 1월, 현대차는 포니 차체와 스티어링휠 설계를 이탈리아 디자인업체인 이탈디자인의 창업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했다. 5월에는 일본 쇼와금형공업으로부터 단조공장 건설과 생산기술 등에 대한 기술지도를 받았다. 또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단조공장에 해머 오퍼레이터들을 보내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기술 훈련이 끝난 인력들을 중심으로 양산을 위한 생산설계 작업에 착수했다. 설계에 따라 영국인 기술자와 합동으로 시제품을 제작했다. 또 주행 및 내구성 테스트를 반복 실시했다. 자체 제작한 시제품과 이탈디자인에서 보내온 프로토타입 승용차 등 5대의 포니 ‘선발대’로 일년내내 테스트를 계속했다. 

개발을 시작한지 1년6개월이 지난 1974년 10월, 포니는 55회 이탈리아 토리노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된다. 한국 최초, 세계 16번째 독자모델 양산에 성공한 것이다. 부품사와의 협력으로 국산화율 90%도 이뤄냈다.

1975년 양산을 시작한 포니는 대박을 쳤다. 출시되자마자 국내점유율 43%를 기록했다. 당시 국내자동차 2만5000대중 절반가량이 포니였다. 1975년 울산공장에서 50대로 시작한 포니는 1976년 1만726대, 1977년 2만5000대, 1978년에는 5만대 등 생산량이 계속 늘었다. 

포니는 현대차에게 첫수출의 쾌거도 안겨주었다. 현대차는 포니 6대를 에콰도르에 처음으로 수출했다. 1975년말까지 62개국 228개 상사가 포니 수입을 희망해왔다. 하지만 양산 첫해에는 중동과 남미의 자동차 비생산국 몇곳을 골라 중점수출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1976년에는 13개국에 1042대를 팔았다. 

출시 10주년인 1986년에는 무려 66개국에 30만2134대가 팔려나갔다. 현대차는 포니 수출을 발판 삼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자동차기업으로 우뚝 성장했다. 

설립된지 채 10년도 안된 일천한 업력의 자동차회사가 독자모델을 개발하고, 출시 10년만에 30만대 넘게  수출한 사례는 세계 자동차산업 200년 역사에 단 한번도 없던 일이다. 정주영-정세영 콤비가 ‘무중생유(無中生有, 무에서 유를 창조)의 신화를 써낸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화목한 부부와 귀여운 자녀로 구성된 4인가족이 포니 자가용의 앞뒤에 나눠타고 외식하러가는 그립엽서 같은 풍경”이 한국의 로망이라고 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는 이런 한국인의 꿈을 실현시켜줬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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