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0) 토주오비(兎走烏飛) 광음사전(光陰似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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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0) 토주오비(兎走烏飛) 광음사전(光陰似箭)
  • 이형로
  • 승인 2022.12.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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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듯, 쏜살같이 빠른 세월
- 인생 그리 길지않아…허물 고치되 남탓 말고, 상대방도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야
兔走烏飛(토주오비)는 달의 상징인 토끼가 달리고 해의 상징인 까마귀가 나는 것처럼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 의미한다. 인생도 그렇게 길지않은 만큼 허물이 있으면 고치되 남탓 말고, 상대방도 너무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게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인터넷 캡쳐) 

몇년만에 눈다운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는 포근하더니 오늘은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춥다. 커텐을 젖히고 창밖을 보니 또 눈이 소복히 내렸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나지 않고 자꾸 아랫목 이불속으로 파고 드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다. ‘이놈아, 밤새 까마귀가 하얗게 얼어 죽었으니 빨리 일어나 주워오너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가 대여섯살쯤, 진짜인 줄 알고 마당에 나가봤더니 서리만 하얗게 끼었을뿐 죽은 까마귀는커녕 산 까마귀도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옆집 애가 먼저 집어갔단다. 그후로도 장소만 바뀌었을뿐 하얗게 얼어죽었다던 까마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얼어죽은 까마귀가 하얗게 내린 서리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토주오비(兎走烏飛) 혹은 오비토주(烏飛兔走)라는 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린다'라는 말이지만, 해와 달의 빠른 바뀜, 즉 세월의 빠름을 비유한 말이다. 이제 나이좀 드니 이 말이 실감난다. 벌써 임인년 호랑이해도 다 갔으니 말이다.

일찍이 당나라 시인 한종(韓琮)은 춘수(春愁)라는 시에서 세월의 빠름을 ‘金烏長飛玉兎走 靑鬢長靑古無有(금오장비옥토주 청빈장청고무유)’라고 한탄했다. ’금빛 까마귀 멀리 날고, 옥토끼 빨리도 달리는구나, 칠흑같은 살쩍 머리 언제까지 검을 손가‘라는 뜻이다.

이 시에서 오비토주(烏飛兎走)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이는 아동계몽서인 증광현문에 실려 있는 ‘光陰似箭 日月如梭(광음사전 일월여사, 시간은 마치 쏜살같고 세월은 베틀의 북처럼 빠르다)’와 같은 의미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속엔 삼족오(三足烏)인 금오(金烏)가 살고있고, 달속에선 옥황상제의 시동인 옥토끼가 선약(仙藥)을 빻고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까마귀는 해, 토끼는 달로 비유했다.

일월여사(日月如梭)는 해와 달이 베틀의 북처럼 빨리 오간다는 말로 세월의 빠름을 뜻하는 성어다. (사진=인터넷 캡쳐)

옛날 요임금때 상상을 초월한 가뭄과 혹독한 더위가 있었다. 그렇게 된 까닭은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무려 열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동방의 천제(天帝)인 제준(帝俊)과 태양의 여신 희화(羲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열개의 태양은 신성한 세발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로 동방의 양곡(陽谷)이라는 곳에 모여 살고있었다.

이들의 어머니인 희화가 만든 규칙은, 열흘을 주기로 순서대로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 떠오르게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질서를 잘 지켜 순조롭게 돌아갔으나, 수만년동안 허구한날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하다보니 지겨워졌다.

지겨움에 장난끼가 발동한 이들은 어머니가 일어나기 전을 틈타 일제히 떠올라 멋대로 공중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놀이랍시고 한 짓이었지만 이세상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문이 열린 것과 같았다.

여축(女丑)이라는 무당을 시켜 기우제까지 지냈으나 소용없자, 요임금은 몸소 제단을 차려놓고 제준에게 하소연했다. 그러자 제준은 천계에서 활을 가장 잘 쏘는 용사 예(羿)를 불러 그에게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신비한 힘이 담긴 붉은 활과 흰 화살을 하사하며 세상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 명했다.

명을 받은 예는 아내인 항아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활을 쏘아 단 하나의 태양만을 남기고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렸다.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태양이면 충분해서였다.

12지(支)중 네번째로 등장하는 토끼는 귀엽고 연약하나 꾀가 많으며 과단성있는 동물로 묘사된다. 토끼는 묘신장(卯神將)으로 표현한다. 묘(卯)는 만물이 잘 자라는 중춘(仲春)의 계절로 음력 2월을 나타내고, 묘시는 아침 5시~7시의 여명을 말한다.

방위는 정동방이며, 밝은 해가 하늘에 높이 떠서 만리를 비춰 주는 것을 상징한다. 오행으론 목성(木性)을 지니며 호랑이와 더불어 동쪽을 방위하는 동물이다. 토끼가 경복궁 근정전 돌난간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전한 시대 유향(劉向, BC.77~BC.6)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 ‘현명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의미의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말이 있다. 천적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든 대응할 수있는 여러 방책을 세워 놓는다 의미다.

중국 속담의 ‘토끼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기 굴 주변의 풀은 먹지 않는다(兎子不吃窩邊草 토자불흘와변초)’라는 말은 "아무리 막돼먹은 놈일지라도 자기 동네에선 못된 짓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토끼는 이 정도의 도덕성을 지닌 현명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는 토사호비(兎死狐悲)의 속뜻은, 토끼가 죽어 사냥할게 없으면 다음의 사냥 대상은 여우가 되기때문에 슬퍼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상황도 마찬가지, 여우가 죽어도 토끼는 슬퍼한다. 여우가 토끼의 천적이지만, 이들에게 더 무서운 천적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기다림이란 전혀 모르는 매우 고약한 녀석이다. 살아보니 우리네 인생도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아까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 허물이 있다면 남탓은 하지 말며 내 자신이 고쳐야 마땅하고, 상대방을 너무 궁지로 몰아넣지는 말아야 한다. 토끼가 다 없어지면 여우도 통곡하게 된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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