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42) DL(대림산업), 전쟁터 한복판의 목숨건 항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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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42) DL(대림산업), 전쟁터 한복판의 목숨건 항만공사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전 SK그룹 사장)
  • 승인 2023.01.1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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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 한창인 1966년 수주…현지진출 1호 건설업체
- 임직원 합심, 경영진배려로 9년간 인명피해없이 사업
- 베트남, 오늘날 한국의 중요한 경제파트너 부상…DL 진취적 도전도 한 몫
DL(옛 대림산업) 로고와 1966년 베트남 라치키아항 항타공사 현장. DL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공사를 수주하며  베트남 진출 1호 건설업체가 됐다. 오늘날 베트남은 우리나라에 없어서 안될 중요한 경제파트너로 부상했는데, 이같은 양국의 굳건한 관계 토대에는 반세기이전 DL의 진취적 도전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DL)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건설업은 해외진출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부 용감한 건설회사들이 1965년을 전후해 해외 문을 두드리면서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그 선봉에 선 기업이 DL(옛 대림산업)이다. 

DL은 1966년 1월28일 미 해군시설처(OICC)에서 발주한 베트남의 라치기아항만 항타공사(Rach-Gia pile driving project)를 약 87만7000달러에 수주했다. 대림산업의 첫 해외프로젝트이자 국내 건설사로는 최초의 베트남 진출이었다.

라치기아 항만 항타공사는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피와 땀, 그리고 미지에 도전하는 개척자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림산업은 라치기아항 건설을 위한 파일링 작업에 앞서 수심측량을 위해 토목과장과 기능공을 선발대로 떠나보냈다. 같은해 4월초에는 제2진으로 직원 4명이 국내현장에서 선발된 기능공(비계, 용접, 중기 요원 등) 50여명을 인솔하고 3800톤급 여수호를 세내어 인천항을 출발했다. 

여수호는 동지나해를 지나 남지나해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출항 19일만에 바이붕곶(Mui Ba-Bung)을 돌아 라치기아항에 닿았다. 입항신고서도 갖추지 않은 채로 떠났기 때문에 현지 경찰서에 무국적선으로 오해돼 억류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더구나 그곳은 수심이 얕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베트콩(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정부와  미국에 맞선 게릴라조직)의 습격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실제로 당시 직원들은 통일된 근무복 차림이었다. 군인으로 오인돼 즉시 철수하지 않으면 전원 몰살시키겠다는 베트콩의 협박 편지를 수차례에 걸쳐 받기도 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현장을 이동할 때는 현지 군 관계자나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해 다니기도 했다. 작업도 주로 낮시간만을 이용했다. 저녁 7시이후에는 직원들의 사사로운 외출이나 외박은 일체 삼가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현지에서 활동하는 베트콩 책임자에게 은밀하게 줄을 대어 약간의 돈과 선물을 건네주고 신변안전을 보장받기도 했다. 어떤 현장에서는 직원들에게 당시 베트남 지폐로 5만 피아스타씩을 나누어 주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했다. 만일 베트콩에게 체포된 경우 그 돈으로 해결해보라는 배려였다. 

전쟁이 소용돌이 치는 한복판에서 공사를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었다. 베트남 현장으로 파견 발령이 난 직원의 가족들은 죽으러 간다고 울고불고 야단이 나기도 했다. DL 창업자인 고(故) 이재준 회장(당시 사장)은 위험한 전쟁터에 남의 자식들만 보낼 수 있겠느냐며, 당시 대림산업에 갓 입사했던 맏아들 이준용 계장(현 명예회장)을 사이공지점에 보내 근무하도록 조치했다. 

DL이 수주한 하노이 경전철 조감도. DL은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공산화된 1976년 철수할때까지 20여건의 공사를 수주했으며, 한국-베트남 수교이후 다시 진출해 지하철공사 수주 등 현지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있다. (사진=DL) 

다행히 1966년에 베트남에 진출해 1975년 철수하기까지 약 9년동안 인명 피해나 불미스러운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대림산업의 전 임직원이 한가족처럼 서로 합심하고, 경영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림산업은 1974년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베트남 정부에 기증한 250병상 규모의 최신식 병원인 ‘한월의료원’을 신축해 좋은 인상을 심었다. 1975년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미 해군시설처(OICC) 등에서 발주한 20여건의 공사를 원청으로 따내며 해외건설의 기초를 견고히 닦아 나갔다.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베트남은 교역규모에서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또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9000여개이며, 지난해 무역흑자는 343억달러로 1위에 올랐다. 베트남은 이제 우리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경제파트너이다. 오늘날 한국-베트남 양국의 이같은 굳건한 협력관계가 쌓인 토대에는 반세기이전 DL의 진취적 도전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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