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6) 하얀 거짓말, 매림지갈(梅林止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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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6) 하얀 거짓말, 매림지갈(梅林止渴)
  • 이형로
  • 승인 2023.04.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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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마음에서 하는 거짓말은 좋은 결과 낳기도
- 정치인의 ‘블랙 라이’, 사회혼란 초래…일부국민들 부추기는 측면도 있어
매실은 맛이 매우 시기 때문에 그 소리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는데, 매림지갈(梅林止渴)은 앞에 매실나무 숲이 있다고해 갈증을 해소하게 했다는 뜻의 하얀 거짓말이다. 하얀 거짓말은 선한 마음에서 하는 거짓말로 때로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진=인터넷 캡쳐)

필자의 집은 지은지 오래돼서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다. 평일에는 다행히 네 식구의 출퇴근 시간이 달라 화장실 이용에 큰 불편함이 없지만 모두 집에 있는 휴일이 문제다. 그래서 누군가 샤워하러 들어갈 때는 먼저 화장실 다녀올 사람이 없냐고 묻는게 불문율처럼 되었다.

그럼에도 샤워하고 있을 때 가끔은 아이들이 용변이 급해 아직 멀었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2~3분이면 끝날 것같아도 "10분후에 끝난다"라고 한다. 사람의 심리가 묘해서 곧 끝난다면 참을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10분후로 생각했다가 2~3분은 쉽게 참을만하다. 이런 경우는 나쁜 마음에서가 아니라 선한 마음에서 하는 하얀 거짓말이 된다.

고려 26대 임금인 충선왕(忠宣王, 1275~1325년)은 즉위했다가 폐위된후 다시 왕위에 오른 복벽(復辟) 군주다. 1298년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아 임금이 됐다가 7개월만에 다시 빼앗기고 몽골 수도 연경에서 생활하던중 10년만인 1308년 부왕인 충렬왕이 죽자 고려로 돌아와 두번째로 즉위하게 된다.

이때 충선왕을 모시던 원나라 여인이 한사코 따르려하자 그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하며 연꽃 한송이를 이별의 징표로 주어 되돌려 보냈다. 압록강을 건너려던 충선왕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8~1367년)에게 그녀를 데려오라 명했다.

익재가 가보니 그 여인은 골방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충선왕만 기다리고 있었다. 의식을 간신히 차린 그녀는 겨우 붓을 들어 시 한수를 적어 주었다.

贈送蓮花片(증송연화편)
初日的的紅(초일적적홍)
辭枝今幾日(사지금기일)
憔悴與人同(초췌여인동). 

'가실때 주신 한송이 연꽃/ 처음엔 붉은 빛이 고왔더이다/ 줄기를 떠난 지 이제 며칠/ 시들어 버린 것이 저와 같더이다.'

익재는 여인의 진심에 가슴이 메었지만, 충선왕에게는 찾기는 찾았지만 젊은 사내들과 놀아나느라 사람이 가도 알아보지 못했노라며 거짓을 고했다. 충선왕은 그럴리가 없다면서도 결국 압록강을 건너 귀국하고 만다.

이듬해 임금의 탄생일인 경수일이 되어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익재는 단 아래로 내려가 이실직고했다. 그리고는 원나라 여인이 써준 연화시를 바쳤다. 비로소 사실을 알게된 임금은 눈시울을 적시며 "만약 그때 경이 새하얀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면, 과인은 이 나라에 돌아오지 못하였으리라"라며 익재를 껴안아 주었다. 흰연꽃처럼 삿됨없는 하얀 거짓말 덕분에 익재는 충선왕의 각별한 신임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새빨간 거짓말은 아주 악의적이고 전혀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말한다., 정치인의 새빨간 거짓말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데, 이는 당사자의 무지나 좋지못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부 국민들이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사진=인터넷 캡쳐) 

삼국지연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비가 허창에 있던 조조에게 한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하루는 조조가 유비를 술자리에 불러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조가 장수(張繡)를 정벌하기 위해 행군할 때 식수가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게됐다. 조조는 꾀를 내어 ‘前有大梅林 饒子甘酸 可以解渴(전유대매림 요자감산 가이해갈, 저앞에 넓은 매화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그대들의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자,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떠올리고는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시냇물을 찾을 때까지 갈증을 참을 수있었다.

이 고사에서 '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해소한다'는 뜻의 '매림지갈(梅林止渴)'이란 성어가 유래했다. 매실은 맛이 매우 시기 때문에 그 소리만 듣고도 입에 침이 고여 갈증이 덜어진다는 뜻이다. 상상을 통해 위안거리로 삼거나, 하얀 거짓말로 실제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비유로 망매지갈(望梅止渴) 또는 망매해갈(望梅解渴)이라고도 한다. 같은 고사가 육조시대 송나라의 유의경이 지은 세설신어 가휼(假譎)편에도 나온다.

사회학에는 거짓말 종류로 악의가 없는 '하얀 거짓말'인 화이트 라이(White Lie), 아주 악의적이고 전혀 진실이 아닌 '새빨간 거짓말'로 다운라이트 라이(Downlight Lie), 정치가들이 입만 열면 내뱉는 거짓말인 블랙 라이(Black Lie)가 있다고 한다.

또한 '입만 열면 병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을 일컫는 의학용어가 있다. 바로 '페소로지컬 라이어(Pathological Liar)'라는 말이다. 뉴욕타임지에 의하면, 트럼프는 유세할 때는 물론 취임 후 40일간 단 한루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그후에도 거짓말을 했던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고 한다. 속칭 ‘입벌구(입만 벌리면 ’구라‘를 치는 사람)'인 셈이다.

스페인 속담에 '거짓말은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는 못한다'라는 말은 정치인들의 '새빨간 거짓말'에 국한된 말이지, 금방 결과를 알 수있는 '하얀 거짓말'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정치인의 말은 사흘만 지나면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본인도 모른다고 한다. 문제는 정치인의 이런 거짓말이 사회를 혼란케 한다는 점이다.

거짓말은 통하니까 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거르고 속는 사람이 없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것이 문제다. 국민 개개인의 수준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까닭은 어떤 목적이 있거나 혹은 당사자가 무지해서이기도 하지만, 일부 국민이나마 그들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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