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7) 경야무원(經夜無怨) 역일무은(歷日無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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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87) 경야무원(經夜無怨) 역일무은(歷日無恩)
  • 이형로
  • 승인 2023.04.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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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지샌 원수없고, 날샌 은혜없어…인망, 얻기 어려우나 잃기는 쉬워
- 주변사람과 원수맺지 말아야…양보할 것은 양보
인망(人望)을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 사소한 일로 주변 사람과 원수를 맺지 말아야 하며,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져도 되는 것은 질 줄 알면 원수가 되는 것을 피할 수있다. 양보하면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별거 아니다. ‘밤 지낸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經夜無怨 歷日無恩 경야무원 역일무은)’는 속담도 있지않은가 (사진=인터넷 캡쳐)

벚꽃•살구꽃이 모두 지고, 지금은 수수꽃다리가 향기를, 산철쭉과 모란이 화사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올봄도 예년보다 일찍 왔다.

지난봄 꽃나무에 새싹이 돋을 무렵 함께 북한산에 오르던 친구가 버드나무를 보더니 갑자기 "아, 봄단풍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봄에 생뚱맞게 단풍이라니. 알고보니 친구는 적녹색약(赤綠色弱)이라 새싹이 붉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봄단풍'이라며 자신의 단점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셈인데, 특히 수양버들의 휘휘 늘어진 가지가 예쁘다고 했다. 연두색의 새잎은 이제 이제 성숙한 녹색을 띠며 바람을 희롱하고 있다.

어제 출근길에 친구가 한시 한 수를 올리고 현대적으로 번역해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자료를 찾아보니 고전풍의 번역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 하지장(何之章, 659~744)의 '영류(詠柳-버들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의 시였다. 하지장은 천재 이태백을 알아보고 '적선(謫仙)'이란 별명을 지어주며 망년지교까지 맺은 인물이다. *2022년 11월15일자 78회 칼럼 ‘금구환주(金龜換酒) 망년지교(忘年之交)’ 참조

碧玉妝成一樹高 (벽옥장성일수고)
萬條垂下綠絲縧 (만조수하녹사조)
不知細葉誰裁出 (부지세엽수재출)
二月春風似剪刀 (이월춘풍사전도)

하지장은 버들을 봄의 여인에 비유했는데 현대시조풍으로 번역해보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비취빛으로 온몸을 치장한 그대 
늘씬하기도 하지
모든 가지 휘휘 푸른 비단띠처럼 늘어졌구나
가녀린 잎새까지 마름질한건 
아마 이월 봄바람이 그랬을거야

사족을 붙이자면, 초장의 '一'은 나무 '한 그루‘라는 개수의 의미보다는, '가득차다(滿)' 혹은 '전체(全)' 또는 '온전하다(全)'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부드럽다. 2월은 음력이니 양력으론 3월쯤이 된다.

경복궁 경회루의 수양버들. 버드나무는 옆으로 심어도 죽지 않고, 거꾸로 심어도 죽지않으며, 심지어 꺾어 심어도 잘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있으며 여기서 ‘절이우생(折而又生)이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사진=이형로)

중국 전국시대 정치가인 진진(陳軫)이 위왕(魏王)에게 중용되자, 혜자(惠子)가 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必善事左右 夫楊橫樹之卽生 倒樹之卽生 折而樹之又生 然使十人樹之 而一人拔之 則毋生楊矣 (필선사좌우 부양횡수지즉생 도수지즉생 절이수지우생 연사십인수지 이일인발지 즉무생양의)’
 
‘먼저 왕의 근신과 관계를 잘 가져두시오, 버드나무를 보시오, 그 나무는 옆으로 심어도 죽지 않고, 거꾸로 심어도 죽지않으며, 심지어 꺾어 심어도 잘 자라는 나무라오, 그러나 열 사람이 버드나무를 심어도 한 사람이 따라 다니며 뽑는다면 한 그루도 살 수 없다오’

그리고 덧붙이길, 나무를 심고 키우는 것은 어렵지만 뽑는 일은 쉽다. 진진 당신 혼자 아무리 일을 잘 할지라도, 당신을 뽑아내려는 자들이 많아진다면 당신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것이다.

한비자 설림(說林)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 고사에서 버드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빗대 '절이우생(折而又生)'이란 성어가 유래했다. 본초강목에서도 버드나무의 질긴 생명력을 ‘버드나무는 세로나 가로로 심든 거꾸로 혹은 바로 꽂든 모두 살아난다’고 실려있다. 이런 특성을 잘 아는 혜자는 진진에게 버드나무를 예로 들어 충고한 것이다.

혜자의 본래 이름은 혜시(惠施, B.C 370~B.C 310?)이며, 송나라 사람이지만 위나라가 주활동지였으며 위나라 혜왕때 재상이 됐다. 그는 강대국 진나라의 위협에 대항해, 위•촉•오가 연합해서 진나라와 맞서는 합종(合縱 세로 연합)을 주장했다. 연횡(連衡 가로 연합)을 주장하는 장의와의 불화로 위나라에서 쫓겨난후 송나라로 귀향해 여생을 장자(莊子)와 토론하며 보냈다.

진진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종횡가다. 진나라에 유세하러 가서 혜문왕의 환대를 받았으나, 그도 장의가 재상이 되자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에서 재상격인 영윤(令尹)이 된다. 그는 위•연•조가 연합해서 강대국인 진나라를 견제하도록 유세했다. 비록 혜시와는 정치적 노선이 달랐지만 그를 스승처럼 존경하고 따랐다.

진진은 '변장자호(卞莊刺虎, 두마리 호랑이를 싸우게 해서 두마리 모두 잡는다는 뜻)', '화사첨족(畵蛇添足, 뱀을 그리는데 발을 덧붙이다는 말로 쓸데없는 짓이라는 뜻)' 등의 고사를 들어 유세한 인물로 유명하다.

혜시는 정치인들에게 '인망(人望)을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고 충고한다. 또한 우리들에게도 사소한 일로 주변 사람과 원수를 맺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져도 되는 것은 질 줄 알면 원수가 되는 것을 피할 수있다. 양보하면 당장 큰일이 날 것 같고, 지면 안 될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별거 아니다. 우리 속담의 ‘밤 지낸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經夜無怨 歷日無恩 경야무원 역일무은)’는 말을 새겨도 좋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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