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0) 관상가관(冠上加冠), 현순백결(懸鶉百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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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0) 관상가관(冠上加冠), 현순백결(懸鶉百結)
  • 이형로
  • 승인 2023.06.0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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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속 수탉과 맨드라미…높은 벼슬자리 의미
- 메추리 얼룩진 깃털처럼 기워입은 누더기옷, 청렴 상징
- 멀쩡한 청바지 찢어입는 패션…옛 선비정신 따르려는 자세(?)
향정(香亭) 조영아의 관상가관도(冠上加冠圖). 수탉과 맨드라미 꽃은 민화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데 수탉의 벼슬을 계관(鷄冠), 이와 흡사한 맨드라미꽃을 계관화(鷄冠花)라 하며, 관상가관(冠上加冠)'은 관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으로 점점 높이 승진하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사진=인터넷 캡쳐)

며칠전 점심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마침 골동품 소개 프로그램에서 민화 병풍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해설이 참 인상적이었다. 

민화는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해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해 그린 생활화를 말한다. 보통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대중들의 치졸한 작품 등을 일컫지만, 넓게는 직업화가인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이나 프로 화가의 그림까지 포함된다.

민화가 인간들의 본능적인 그림에 대한 의지와 욕구를 표출하며, 생활 습속과 종교에 얽힌 대중적인 실용화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있다. 석기시대의 암벽화, 청동기시대의 공예품, 삼국시대의 고분벽화와 전(塼), 고려•조선시대의 공예품 등에 민화와 같은 그림이나 문양이 많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첫번째 소개된 그림은 수탉과 맨드라미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다. 전통사회의 입신출세는 뭐니뭐니 해도 벼슬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수탉의 벼슬은 그 발음이 벼슬과 같아서 벼슬자리를 상징한다. 수탉의 벼슬을 계관(鷄冠)이라 하며, 이와 흡사한 맨드라미꽃을 계관화(鷄冠花)라 한다. 벼슬이 멋진 수탉과 그 위에 맨드라미꽃을 그리면 벼슬을 얻어 점점 높이 승진하라는 기원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탉과 맨드라미를 그릴 때는 그 높이를 달리해야 더 높은 벼슬자리로 승진하라는 의미가 된다. 이와같이 수탉과 맨드라미를 함께 그린 그림을 관 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의 ‘관상가관(冠上加冠)'이라 하여 '관상가관도(冠上加冠圖)'라 한다.

두번째 그림은 목련꽃과 수석(壽石)이 어우러진 그림이다. 목련은 한자명으로 신이(辛夷)라 한다. 생약으로서의 목련은 쓴맛이 난다해서 '신(辛)', '이(夷)'는 목련의 꽃봉오리가 띠의 애순인 삘기[荑]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신치(辛稚), 후도(候桃), 목필(木筆) 등이 있다. 신치는 신이와 발음이 비슷해서, 후도는 목련의 꽃봉오리가 작은 복숭아를 닮아서, 그리고 목필은 붓 머리 같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용 17장에 ‘故大德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고대덕필득기위, 필득기록, 필득기명, 필득기수)’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덕을 지닌 이는 반드시 지위를 얻고, 반드시 녹봉을 얻으며, 반드시 명성을 얻고, 반드시 그에 걸맞은 수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큰 덕을 갖춘 순(舜)임금은 위(位)•녹(祿)•명(名)•수(壽) 등의 복을 얻어 지위도 높고, 봉록도 많고, 이름도 날리며 오래 살았다. 여기서 민화는 순임금이 110살까지 장수했다는데 주목했다.

수석과 함께 그려진 목련을 '필득기수(必得其壽)' 도안이라 하며 순임금처럼 장수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돌(수석) 옆에 목련을 배치해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목련꽃 대신 목련 꽃봉오리 모양을 닮은 붓(筆)을 그려 넣기도 한다. 옛 그림 특히 민화에서는 그려진 사물을 한자로 바꾸어 글자를 읽듯이 소재의 의미를 따져가며 감상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감상법을 독화(讀畵)라 한다.

'현순백결(懸鶉百結)'은 메추리의 얼룩진 깃털이 흡사 가난한 선비가 누더기 옷을 기워입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로 청렴의 정신을 상징한다.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멀쩡한 청바지의 물을 빼고 찢어서, 누더기 같은 옷을 입는 유행이 옛 성인의 삶을 따르려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인터넷 캡쳐)

세번째는 메추리와 국화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다. 비전문가가 그린 민화 병풍의 한 폭으로 조금 치졸했지만 나름 전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묘사하고 있다. 메추리 그림을 잘 그린 화가로는 조선 후기 최북(崔北, 1713~1786)이 있다. 그는 산수화로 유명하지만 메추리 그림도 실감있게 잘그려 별명이 '최 메추리(崔鶉)'로 불릴 정도였다.

그의 메추리 그림에는 언덕을 배경으로 화면 한가운데 한쌍의 메추리가 국화와 갈대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놀고있는 작품이 있다. 메추리는 한자로 암(鵪)•순(鶉)•료(䨅) 등으로 쓰며 성질은 대체로 부드럽고 순하며 철새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꽁지깃이 없어서인지 풀숲에 숨으면 잘 보이지 않으며 외모는 기운 누더기를 입은 것 같고, 작은 풀을 만나도 피해 돌아간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만족하며 사는 소박하고 순박함을 지닌 새다.

이 가운데 암(鵪)은 편안할 안(安)과 중국 발음이 같은 '안(an)'이며, 국화 국(菊)은 살 거(居)자와 같은 발음인 '쥐(ju)'와 발음이 같다. 결국 메추리와 국화를 함께 그린 것은 편안한 삶을 소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어 이를 '안거도(安居圖)'라 부르기도 한다.

메추리 한쌍이 조이삭을 배경으로 땅위에 흩어진 조를 쪼아먹는 '최 메추리'의 다른 작품이 있다. 조는 벼(禾)과의 곡식으로 풍성한 결실을 상징하며 메추리와 함께 그려 '안화도(安和圖)'라 한다. 여기서도 안(安)은 암(鵪)과 중국 음이 같고, 화(和)는 화(禾)와 소리가 같기 때문에, 화평하게 복을 누리고 살라는 축원의 의미가 있다.

그림에서 메추리의 얼룩진 깃털은 흡사 가난한 선비가 누더기 옷을 기워입은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현순백결(懸鶉百結)' 또는 '순의백결(鶉衣百結)'이라는 성어로 표현한다. '옷이 해져서 너덜너덜한 것이 메추리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과 같다'는 뜻으로 청렴한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고개숙인 조이삭은 겸손의 미덕을, 한쌍의 메추리는 한번 정한 짝을 바꾸지 읺는 메추리의 습성에 근거한 화목한 부부를 암시한다.

장자 외편 천지(天地)편에, 요임금이 화(華)땅을 유람할 때 그곳 봉인(封人,국경지기)에게 성인임네 난체하다가 ‘夫聖人鶉居而鷇食 鳥行而無彰(부성인순거이구식 조행이무창)’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무릇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없이도 산과 들의 자유를 즐기고, 새 새끼가 어미가 주는 것을 받아먹듯 자연에 맡기며 살아가고, 새처럼 자유로이 다니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요’이라는 뜻이다.

이 고사에서 '성인의 삶은 메추리같이 사는 것'이란 뜻의 '성인순거(聖人鶉居)'라는 성어가 유래한다. '순거'는 머무는 곳이 일정치 않음을 뜻한다. 성인은 환경에 지배되지 않으니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현순백결(懸鶉百結)의 '현순'은 누더기 옷을 입을 정도의 가난 속에서도 안분자족(安分自足)함을 의미한다.

이같은 삶이 성인에게만 국한된건 아닐 것이다. 노자도 ‘禍莫大於不知足 知足常樂(화막대어부지족 지족상락, 만족하지 못하는 삶보다 큰 재앙이 없고, 만족하는 삶은 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멀쩡한 청바지의 물을 빼고 찢어서, 누더기 같은 옷을 입는 이유가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함이라면 그 정신은 높게 사고싶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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