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1) 일본 원전오염수 방류와 어목혼주(魚目混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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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1) 일본 원전오염수 방류와 어목혼주(魚目混珠)
  • 이형로
  • 승인 2023.06.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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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있는 상태
- '과학적 수치 근거, 인체무해’ VS. '그러면 일본국내서 처리하면 될 일'
어목혼주(魚目混珠)는 한시외전의 ‘白骨類象 魚目似珠(백골유상 어목사주)’이란 말에서 유래한 성어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하는 성어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는 과학적 수치를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면 일본 국내에서 처리하면 될텐데 왜 해양방류를 하느냐’는 의문은 여전하며, 국민의 불안감은 커져가고 있다. (사진=인터넷 캡쳐)

60년대 필자가 어렸을 때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서 구슬을 '다마(玉)'라 불렀다. 구슬치기도 '다마치기'라 했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치른 전투의 결과로 상자 가득 딴 구슬을 밤이 깊도록 세어보며 흐뭇해하던 기억이 난다.

이때 구슬들은 한 상자에 담겨 있어도 각각 값어치가 달랐다. 맹유리 구슬을 기본이라 한다면 사기 구슬은 2개로, 그 가운데 귀한 것이 있었는데 우리가 '아이노꾸'라 부르던 녀석들이었다. 아이노꾸는 맹유리 구슬 무려 3~5개를 쳐주는 색구슬이었다.

나중에 커서 알았지만, 아이노꾸는 일본어로 '혼혈아'를 뜻하는 '아이노꼬(あいのこ, 合いの子 또는 間の子)'였다. 어떻게 유리속에 그렇게 예쁜 색을 넣을 수 있었는지. 어린 눈에는 그것이 보석이었다. 이런 구슬들은 한 상자에 넣어 보관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물처럼 섞이는 것이 아니어서 상자를 열면 금방 식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임방(任昉, 460~508)은 송(宋)•제(齊)•양(梁) 나라의 3국에 걸쳐 벼슬을 했으며 중국문학사에서 경릉팔우(竟陵八友)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박학다식한 학자이며 1만여권의 장서가로도 이름이 높다.

임방의 글은 문선(文選)에 여러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도대사마기실전(到大司馬記室牋)'에서 자신을 발탁한 조정에 감사하며, 자신은 물고기 눈알처럼 쓸모없는 사람임에도 조정에서 값진 보옥처럼 취급하였노라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를 두고 당나라 이선(李善, 656~661)은 한시외전(韓詩外傳)의 ‘흰 뼈는 상아와 비슷하며, 물고기 눈알은 구슬과 흡사하다(白骨類象 魚目似珠 백골유상 어목사주)’라는 구절을 인용해 주를 달았다. 여기서 ‘어목혼주(魚目混珠)'라는 말이 유래해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하는 성어로 사용된다. 또한 천한 것과 귀한 것 또는 열등한 것과 우수한 것이 뒤섞여 있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물고기의 눈과 연산에서 나는 돌은 구슬처럼 보이나 구슬이 아니다'라는 뜻의 '어목연석(魚目燕石)', '연석을 보배로 안다'는 '연석망진(燕石妄珍), '물고기의 눈과 보배와 뒤섞여 있다'는 뜻의 '어목혼진(魚目混珍)' 등도 같은 의미의 성어로 쓰이고 있다.

정부는 천일염 사재기 현상 등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일일브리핑에 나섰다. (사진=국무조정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가 우리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국민건강에 관한 문제인데다 오염수와 바닷물이 섞여진 상태가 ‘오색영롱한 구슬과 맨구슬’이 구분되듯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양방류되는 오염수의 용어부터 논란이다. 지난달 여당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태스크포스' 위원장이 방송에서 ‘오염 처리수’라고 하자 원자력안전연구 전문가가 즉각 반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당 관계자의 이야기는 ‘바깥으로 방류하는 물에 대해서는 일단 처리해서 나가는 것이므로 '오염 처리수'라 쓰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자력안전연구 전문가는 우리나라 원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보다 정화를 훨씬 더 잘해서 내보내는 물에도 처리수라 하지 않고 '배출수'라는 용어를 쓴다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버리는 물을 처리수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도단이라 했다. 처리수라는 용어는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우리정부가 나서서 처리수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하는건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영국 BBC와 미국 CNN, 중국관영 글로벌타임스 등의 기사에서는 '오염수(contaminated water)', '폐수(wastewater)'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혹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물이 무엇에 오염됐는지 독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방사성 물(radioactive water)'이라는 표현도 쓴다. 반면 일본 주장을 나타내는 문장에서만 '처리수(treated water)'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얼마전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한 양국 국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국민은 반대 84%, 찬성 12%였다. 반면 일본국민은 찬성이 60%, 반대30%였다.

‘천일염 사재기’ 현상에서 보듯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일일브리핑에 나선 것도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과학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오염수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강조한다. 이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마셔도 될 정도여서 바다에 방류해도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라면, 일본 국내에서 처리해도 충분할텐데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왜 방류를 고집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정부가 왜 일본정부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오염수의 무해함을 강조하며 우리국민 걱정보다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논어 안연(顔淵)편 '선사후득(先事後得)'이란 말이 있다. 곤란한 일을 먼저 하고 보답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정부가 일본 정부의 어려움을 대신해 자국민을 설득하고 있으니 선사후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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