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3) 서울-양평 노선, 과전이하(瓜田李下) 의이지방(薏苡之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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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3) 서울-양평 노선, 과전이하(瓜田李下) 의이지방(薏苡之謗)
  • 이형로
  • 승인 2023.07.1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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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혜의혹과 가짜뉴스 공방
-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근거없는 중상모략’일까
과전이하(瓜田李下)는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로 의심받기 쉬운 행동은 피하라는 의미이며, 의이지방(薏苡之謗)은 근거없는 비방으로 중상모략을 한다는 성어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의혹이 제기된 서울-양평 고소도로 ‘대안’노선 논란은 과전이하와 의이지방을 떠올리게 하고있다. (사진=인터네 캡쳐)

지난봄 어스름이 내려 조명등이 켜질 무렵이었다. 덕수궁내 순찰을 돌다보니 미술관 계단 옆 바닥조명이 하나 안들어오는 것 같아 자두(오얏)나무 뒤로 가봤다. 바람에 꺾인 나뭇가지가 불빛을 가리고 있었을뿐 조명은 이상이 없었다.

나뭇가지를 치우고 나오는데 분수대 벤치에 앉아있던 초로의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익은 자두가 있느냐며 말을 건넨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아, 요즘 자두가 익어가는 때지! 아주머니는 이곳 자두가 맛있어 이맘때면 덕수궁에 들려 한두 개씩 따먹고 간단다.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는 필자가 조명 때문에 자두나무 뒤에서 어정인걸 보고 자두를 따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하필 그곳 조명 때문에 괜한 오해를 부른 것이다.

문선 악부편(文選 樂府篇)에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군자행(君子行)이 실려있다.

君子防未然(군자방미연, 군자는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방지하여)
不處嫌疑間(부처혐의간, 의심받을 처신은 하지 않는다네)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오이밭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고)
李下不正冠(이하부정관,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다네)

여기에서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말고, 자두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말라'는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이란 말이 유래했으며, 이를 줄여 과전이하(瓜田李下)란 성어가 만들어졌다. 즉, 의심받을 짓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 기원전 77~6년)이 지은 열녀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威王)이 즉위한지 9년이나 지났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농단한 탓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를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주파호 같은 간신은 물리치고 북곽선생과 같은 어진이를 등용하라 간언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선생은 전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오히려 그녀를 모함했다. 이를 믿은 위왕은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규명하라 명했다. 그러나 위왕은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의 조사방법이 의심스러워 직접 심문했다.

그러자 우희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유하혜(柳下惠)라는 사람이 겨울밤 추위에 꽁꽁 언 여인을 자기 침상에 끌어들여 몸을 녹여주었지만 남녀사이를 의심하는 시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평소 행동이 단정했기 때문이지요. 만일 저에게 죄가 있다면 군자행 구절의 '과전이하'처럼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사전에 피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저의 부덕한 탓이니 죽음을 내린다해도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으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주십시요."

이에 위왕은 우희의 충심어린 간언을 듣고 지금까지의 미몽에서 깨어나 주파호 일당을 처단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게 됐다. 

후한(後漢) 광무제 때 촉(蜀)을 정벌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이란 칭호를 얻게된 된 마원(馬援, 기원전 14~기원후 49년)이 교지(交趾, 베트남 북부)를 정벌할때 늘 율무(薏苡)를 먹어서 풍토병인 장기(瘴氣)를 예방할 수있었다. 마원은 철군할때 종자로 삼기위해 한 수레 가득 싣고왔다.

그게 무엇인지 알리없는 사람들은 싣고 온 것이 '진주와 무늬가 있는 코뿔소 뿔(明珠文犀 명주문서)'일 것이라며 부러워했다. 조정에서도 뒷말이 있었으나 황제의 신임이 두터운 마원인지라 더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그후 마원이 변방 정벌중 숨지자,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황제의 사위 양송(梁松)이 예전에 마원이 교지에서 한 수레 가득 보물을 싣고왔다고 참소했다.

이에 격노한 광무제는 마원의 작위까지 몰수했다.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마원의 아내는 황제에게 읍소하며 말하길 "그때 싣고 온 것은 율무였습니다. 남방의 율무는 알이 굵고 흰빛이 나서 언뜻 보면 진주와 같습니다. 폐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아직도 저의 집에 남아 있으니 그 증거가 될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원이 누명쓴 것을 알게 된 황제는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했다.

이 고사에서 '근거없이 남을 중상모략한다'는 뜻의 '의이지방(薏苡之謗 혹은 억이지방)‘이란 성어가 유래한다. '의이명주(薏苡明珠 혹은 억이명주)'라고도 하며, 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희와 마원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나라, 더 나아가 미국 등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있는 ‘가짜뉴스’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노선을 놓고 여야간 공방이 치열하다. 야당은 고속도록 종점 인근에 수천몊의 땅을 갖고있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위해 노선을 변경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여당을 몰아세우고 있다. 반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여당은 전정부에서 선정된 용역업체의 대안 제안과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김 여사 일가의 땅 소유는 ‘우연의 일치’라고 반박하고 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노선의 진실(팩트)은 과연 무엇일까. 이하부정관인가 아니면 의이명주인가.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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