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정부는 적용예외…안보이는 잘못도 엄격히 찾아내 비판•문책 마땅
멀리서 찾아온 친구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더위를 식힐겸 카페에 들렸다. 한낮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우리 자리 왼쪽엔 오십대 여인 네댓명이, 오른쪽엔 육십대 남자 서너명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여인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한 여인이 작은 목소리로 자기 남편 흉을 보기 시작하자 다시 웃음바다가 된다. 이어서 다른 여인, 그리고 또다른 여인이, 남편 흉보기는 계속됐다. 그런데 흉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었다. 생활속에 흔히 겪을 수있는 작은 실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실내가 조용해지자 오른쪽 사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술주정을 했다는 얘기, 술값내기 싫어하는 친구는 그날도 화장실 간다는 핑계대고 빠져나갔다는 등 대부분 친구들에 대한 가벼운 뒷담화였다.
중국에선 옛부터 '요순시대'를 가장 태평성대였던 이상향으로 삼고있다. 중용 제6장에서 공자는 ‘舜其大知也歟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所以爲舜乎, 순기대지야여 순호문이호찰이언 은악이양선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기소이위순호)이라고 말하고 있다.
"순 임금은 크게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묻기를 좋아하고 사소한 말이라도 잘살펴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점은 널리 알렸다'. 이 양쪽을 잘 조절하여 백성들에게 적절한 방법을 썼다. 이런 점이 순 임금이 순 임금이 된 까닭이다"는 뜻이다.
순 임금은 '상대방의 허물은 숨겨주고 좋은 점은 드러내며(隱惡揚善 은악양선)' 백성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순시대의 국가란 중앙집권제의 큰 나라가 아니고 여러 씨족이 모인 부족국가였다. 만일 그런 식으로 통치하지 않았더라면 내전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은악양선은 부득이한 통치술일 수가 있다.
이를두고 당나라의 한유(韓愈, 768-~824)는 사대부들이 서로 헐뜯기를 일삼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글인 '원훼(原毁)'에서 '순 임금과 같은 점은 따르고, 순 임금과 다른 것은 멀리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백성들의 다투는 마음이 없어진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또한 이황(李滉, 1502~1571)은 퇴계집 '정도가의 문목에 답함(答鄭道可問目)'에서 "사람은 남에 대하여 허물이 있는 가운데서 허물이 없는 점을 찾아야 하고 허물이 없는 가운데서 허물이 있는 점을 찾아서는 안된다.(人當於有過中無過 不當於無過中求有過, 인당어유과중무과 부당어무과중구유과)‘라 했다.
이 말은 본래 남송의 정이천(程伊川)이 한 말인데 퇴계가 인용해 더욱 무게를 지니게 됐고, 송시열이 정몽주의 신도비에 쓰면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유나 퇴계의 말은 모두 정치지도자들의 '은악양선(隱惡揚善)'이 정국을 안정시켜 백성들을 편하게 한다는 뜻이다.
최근 우울하고 참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 국민들을 안타깝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집중호우와 (막을 수도 있었던) 인명피해, 실종자 수색 병사의 사망,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묻지마 살인사건 등등. 세상이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한비자 대체편(大體篇)에 ‘寄治亂於法術 託是非於賞罰 屬輕重於權衡 不逆天理 不傷情性 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기치란어법술 탁시비어상벌 속경중어권형 불역천리 불상정성 불취모이구소자 불세구이찰난지)’이란 구절이 있다.
"혼란한 정치는 법에 맡기고, 옳고 그름은 상벌에 의지하였고, 가볍고 무거움은 저울로 나누었다. 하늘의 바른 도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해치지 않았으며, 터럭을 불어서 작은 흠집을 찾지않고, 때를 씻어내면서까지 알기 어려운 것까지 살피려 하지 않았다."
짐승의 몸에 난 사소한 흠은 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 바람불어 헤치면 안보이던 흠집이 드러난다. 윗글에서 유래한 '취모구자(吹毛求疵)' 또는 '취모멱자(吹毛覓疵)'란 성어는 '남의 잘 보이지 않는 허물까지 각박하게 캐내 비난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순시대는 씨족사회가 근간을 이룬 부족국가로 지금과 비교하면 손바닥만한 나라여서 그런 통치술이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복잡한 사회구조에서도 가능할까? 덮어 주려해도 인터넷의 발달로 불가능할 것이다.
은악양선은 정치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취모구자도 그럴까? 웬만한 작은 허물은 덮어줘도 좋다. 그러나 권력에 대해서는 예외다. 권력자, 정부의 문제점과 잘못은 취모구자보다 더한 방법을 써서라도 찾아내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언행, 정책은 국민생활과 직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의 성쇠를 좌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중호우 전후에 벌어진 해외순방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와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숍 ‘방문’ , 대구시장의 골프 라운딩, 충북지사의 언행, 그리고 ‘인재’로 드러나는 관계기관들의 무책임한 대응 등은 취모구자 이상의 잣대가 적용돼야할 일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