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5) 불염상정(不染常淨) 광풍제월(光風霽月)
상태바
[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5) 불염상정(不染常淨) 광풍제월(光風霽月)
  • 이형로
  • 승인 2023.08.14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늘 맑고 깨끗한 연꽃
- 마음이 넓고 쾌활하며 거리낌 없는 인품
- 연꽃 구경와서 ‘추한’ 생각하는 우리들…정호승 시인의 일침
청남(靑南) 권영한의 處染常淨(처염상정)과 완재(玩齋) 송기영의 光風霽月(광풍제월)‘ 작품. 처염상정(또는 불염상정 不染常淨)은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더럽지 않고 늘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며, 광풍제월은 중국 송대의 시인 황정견이 연꽃을 사랑한 주돈이의 성정을 표현한 말로 '마음이 넓고 쾌활하며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뜻한다. (사진=인터넷 캡쳐) 

궁궐에 연못을 파는 이유는 물론 조경을 위해서지만 한편으론 방화수로 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덕수궁에도 비록 작지만 여느 궁궐처럼 연못이 있다. 

연못은 '못'이라는 순우리말에서 파생된 말이다. 못이란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넓고 길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가리킨다. 못을 뜻하는 한자로는 지(池)•소(沼)•당(塘) 등이 있다. 문화가 발달하며 궁궐이나 저택 안에 정원이 꾸며지면서 못가운데 섬을 만들거나 수초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 불교가 성행하면서 송나라와의 빈번한 교류가 시작되고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유명한 '애련설(愛蓮說)' 등과 같은 작품이 소개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수초로는 연꽃을 즐겨 가꾸어 마침내 정원안의 못을 '연못' 또는 연지(蓮池)•연당(蓮塘) 등으로 부르게 됐다.

덕수궁의 연지에도 몇년 전에 홍련•백련을 심었지만 그해에만 꽃을 피우다 겨울에 뿌리가 얼어 이듬해에 모두 죽었다. 연못물이 얕았기 때문인지 수련을 심었을 때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그후 노랑어리연을 심었는데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주돈이(周敦頤, 1017~1073년)는 북송시대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학자다.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이며, 이른바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형이상학적 사유는 그에 의하여 시작됐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우주론을 논술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도덕론을 설명한 '통서(通書)'가 있다.

연꽃은 흔히 군자의 지조와 절개, 청렴에 비유된다.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늘 맑고 깨끗하며 그렇다고 너무 요염하지도 않고, 줄기는 속이 비어있어 서로 통하고 겉은 곧으며, 넝쿨이 뻗어 나가지도 않고 가지가 벌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진=이형로) 

주돈이는 연꽃을 사랑했다. 그는 비록 짧지만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을 통해 연꽃 예찬론을 폈다. 그가 연꽃을 사랑한 이유는 연꽃의 특성이 군자의 덕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랑한 연꽃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다.

予獨愛蓮之 出於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여독애련지 출어니이불염 탁청련이불요)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중통외직 불만불지 향원익청 정정정식)
可遠觀而不可褻翫焉 (가원관이불가설완언)

‘나는 특히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지 않으며, 맑은 물결로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다/ 가운데는 비어있으면서도 겉은 곧으며, 덩굴 뻗지 않고 가지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지고, 오똑 서있는 모습이 정결하다/ 멀리서 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더럽지 않고 늘 맑고 깨끗하다(不染常淨 불염상정, 또는 處染常淨 처염상정)‘. 그렇다고 너무 요염하지도 않다. 줄기는 속이 비어있어 서로 통하고 겉은 곧다. 넝쿨이 뻗어 나가지도 않고 가지가 벌어지지도 않으니 군자의 지조와 절개 그리고 청렴함을 닮았다.

그러면서 '그 향기는 멀리 퍼져나갈수록 맑고 향기롭다(香遠益淸 향원익청)‘.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가서 가지고 놀 수는 없으니 고고함의 표상이다. 그러니 연꽃은 '꽃중의 군자'(花中君子)'다. 애련설은 주돈이가 군자의 덕을 연꽃에 빗대어 이야기한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이자 서예로 유명했던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주돈이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용릉주무숙 인품심고 흉회쇄락 여광풍제월.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너무나 고매해서, 마음이 깨끗하기가 마치 눈비 갠뒤 부는 시원한 바람이요 밝은 달과 같다)

무숙은 주돈이의 자(字)이며, 이 글에서 '마음이 넓고 쾌활하며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성어가 유래한다.

송나라의 증조(曾慥, 字는 端伯, ?~1155)는 '화중십우(花中十友)'에서 연꽃을 '깨끗한 벗'이란 뜻의 '정우(淨友)'라 했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 동쪽 조그만 못에 연꽃을 심고 '정우당(淨友塘)'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같은 제목으로 시까지 한 수 읊었다.

物物皆含妙一天(물물개함묘일천, 모든 사물이 온 하늘의 오묘함을 품었는데)
濂溪何事獨君憐(염계하사독군련, 염계 주돈이는 어떻게 연꽃 그대만을 사랑했는가)
細思馨德眞難友(세사형덕진난우, 연꽃의 향기로운 덕 곰곰히 생각하니 실로 벗하기 어려운데)
一淨稱呼恐亦偏(일정칭호공역편, 깨끗하다는 한가지로만 칭찬한다면 이또한 치우친 듯하네)

주돈이가 애련설에서 연꽃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증조는 다만 '깨끗한 벗(淨友)'이라고만 불렀으니 미진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퇴계는 '정우'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정호승 시인은 '연꽃 구경'에서 '처염상정'을 잊고사는 우리를 ‘아름답게, 그러나 예리하고 무겁게’ 나무라고 있다.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꽂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 ... ... //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해가 질 때쯤이면/ 연꽃들이 오히려/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연꽃이 처염상정과 군자를 상징하는 그런 꽃인 줄은 알지만, 그 꽃을 보면서도 부동산이나 가상화폐 등의 투기로 부자가 될 꿈을 꾸거나 그렇게 해서 졸부가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게 우리들이다.

연꽃이 피면 연꽃 구경 나온 '달도 별도 새도' 모두 연꽃이 되는데, 왜 우리 인간들만 같은 연꽃을 보면서도 딴 짓을 하거나 딴 생각만 하는 걸까. 그러니 연꽃이 이런 인간들에게 연민마저 느껴,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야 할까 궁금해서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경복궁의 향원지(香遠池), 창덕궁의 부용지(芙蓉池)•와 애련지(愛蓮池), 도산서원의 정우당(淨友塘) 등의 명칭은 주돈이의 애련설과 증조의 화중십우에서 연원한 이름이다. 연꽃을 군자로 의인화•인격화 시켜 그 속에서 도덕적 가치를 찾아 내고자했다.

연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김부식이 백제의 궁궐을 둘러보고 한 표현이다. 지난 5월 부여에 갔다가 못보고 온 궁남지 연꽃, 늦깎이 연꽃이라도 피어있으려나 이참에 휴가라도 받아 다시 가봐야겠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93, 102동 437호(신천동,더샵스타리버)
  • 대표전화 : 02-3775-4017
  • 팩스 : -
  • 베트남 총국 : 701, F7, tòa nhà Beautiful Saigon số 2 Nguyễn Khắc Viện, Phường Tân Phú, quận 7, TP.Hồ Chí Minh.
  • 베트남총국 전화 : +84 28 6270 1761
  • 법인명 : (주)인사이드비나
  • 제호 : 인사이드비나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16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14
  • 발행인 : 이현우
  • 편집인 : 장연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진
  • 인사이드비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사이드비나.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sidevina@insidevina.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