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8) 비이자안(卑以自安), 망자비박(妄自菲薄)
상태바
[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8) 비이자안(卑以自安), 망자비박(妄自菲薄)
  • 이형로
  • 승인 2023.10.10 2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스스로를 낮추면 마음이 평안
- 겸손도 실력 따라야 가능…‘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비하’ 말아야
妄自菲薄(망자비박)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스스로 비하한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낮추면 마음이 평안(卑以自安)한데 겸손도 실력이 따라야 가능한 것인만큼 ‘망자비박’할 일은 아니다. (사진=인터넷 캡쳐) 

추석 연휴에 이은 한글날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토요일, 덕수궁은 두개의 행사에다 미술관의 장욱진 화백 회고전 등으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하루였다.

게다가 지난달 개관한 돈덕전(惇德殿)이 입소문을 타면서 서문인 평성문(平成門) 쪽도 관람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이런 와중에 이맘때쯤 평성문 기와 위에 피고있는 와송(瓦松)이 문득 떠올랐다. 몇년전 10월중순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평성문 앞에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다 우연히 지붕 위에 하얀꽃이 핀 와송을 보았다. 당시 덕수궁에 9년째 몸담고 있었지만 궁궐 지붕에 핀 와송은 이때 처음 보았다.

꽃*나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새삼 느끼지만, 생물 특히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에 한두번 감탄한게 아니다. 관람객들을 살펴보다 잠시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올가을에도 지붕 위에 와송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기와장 틈새의 흙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자신의 DNA를 퍼뜨리기 위해 피우는 꽃이라니! 

한옥은 지붕 서까래를 걸고 개판을 덮으면 기와를 올린다. 보토라고 하는 지붕 바닥흙을 개판에 다져깔고, 처마 끝에서 용마루 방향으로 암키와와 수키와를 잇는다. 이때 기와가 밀리지 않도록 수키와 속에 홍두깨 흙을 다져넣고, 처마 끝에서 흙이 보이는 부분은 와구토(석회)로 마감하거나 연화나 당초가 새겨진 막새를 댄다. 

궁궐에서는 용과 봉황이 새겨진 막새를 쓰고 있다. 기와 지붕은 사시사철 눈비를 맞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봄이면 벌건 황토가 흘러내린다. 그 흙이 기와 틈새에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이런 곳에서 자라는 와송이다.

덕수궁 서문인 평성문 위 기와에 핀 와송 당나라 문장사우 시인 중 하나인 최융은 산문 ‘와송부(瓦松賦)’에서 와송의 생김새와 생태를 빗대어 왕족과 귀족의 행태를 은근히 꼬집었다. (사진=이형로)

와송은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기와솔 또는 바위솔이라고도 하며, 옛부터 귀한 약재로 쓰였다. 높이는 6~15cm 정도로 자라며, 잎은 초록색 혹은 자줏빛을 띈다. 특히 지붕의 기와 틈새에서 많이 볼 수있는데, 자라는 모양이 소나무 잎이나 꽃, 솔방울을 닮았다 해서 와송이라 부른다. 또는 잎이 두껍고 다닥다닥 붙어 나와서 마치 기와를 포개 놓은것처럼 보여 와탑(瓦塔)이라고도 한다. 

잎은 살이 많고 두툼하며 끝이 비늘처럼 뾰죽해 얼핏보면 불가사리 모양이 섬뜩하게 느껴져 사람들이 멀리해왔으며, 사람들은 바위 틈에 자라는 와송을 보고 '범발자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와송속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주로 분포하며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도 자란다. 꽃차례가 마치 용설란처럼 식물체에 비해 커서 꽃을 피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와송은 시들어서 죽는다. 

와송은 건조한 기후와 장소에 적응하기 위하여 잎에 물을 저장하는 다육식물이다. 와송은 우리나라에서 돌나물•기린초•쇠비름•채송화와 같은 몇 안되는 다육식물 가운데 하나다.

줄기에 촘촘히 붙은 피침형 잎은 끝이 뾰죽하며 다육식물답게 통통하다. 9~10월에 줄기 끝의 수상꽃차례에 작은 흰꽃이 다닥다닥 핀다. 바위 및 각종 지붕, 담벽, 산야의 양지바른 경사지의 바위 틈에서 자란다. 특히 오래된 기와 지붕에서 피는 꽃과 같다고 하여 와화(瓦花)라고도 부른다. 다른 한자어로는 하늘을 향해 피는 꽂이라 하여 향천초(向天草), 바위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석련화(石蓮花)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손톱처럼 작은 연화라는 뜻으로 ‘츠메렌게(爪蓮華)’라고 한다.

옛부터 와송의 전초(全草)는 소종(消腫)•진통•지혈•소독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최근에는 강한 항암성분의 발견으로 각종 암세포를 파괴하며, 전이를 막고 수술후 재발방지에 효과가 뛰어나 항암제로 개발되고 있다. 또한 와송차는 노화를 방지하고, 간기능 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애주가들에게 각광을 받고있다.

당나라 초기의 시인인 최융•이교(李嶠)•소미도(蘇味道)•두심언(杜審言)을 문장사우(文章四友)라 부르는데, 이들은 모두 궁정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가운데 최융(崔融, 653~706)은 와송의 생태를 사람에 빗대어 와송부(瓦松賦)라는 산문을 남겼다.

최융은 궁정시인이었으니 당연하게 황제와 황족 그리고 귀족 앞에서 그들을 찬양하는 글을 지었지만, 궁궐 지붕 위에서 자라고 있는 와송을 관찰하며 그들의 행태를 은근히 비꼬았다. 

와송의 생김새•생태 등을 언급하며 ‘卑以自安 類石蒲之九節 進不必媚 居不求利 芳不爲人 生不因地 其質也菲 無添于天然’(비이자안 유석포지구절 진불필미 거불구리 방불위인 생불인지 기질야비 무첨우천연)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낮추어 마음이 평안하니 물가에서 자라는 석창포와 같은 부류요, 나아감에 아부하지 않고, 살아감에 잇끝을 탐하지 않고, 누굴 위해 향기를 풍기는 것도 아니며, 사는 곳도 가리지 않는다. 이렇듯 자신이 향기로우니 타고난 그대로 무엇을 더할 것도 없다’

석포(石蒲)와 구절(九節)은 모두 석창포(石菖蒲)의 다른 말이다. 석창포는 물가, 즉 권력 곁에 있지만 절개를 지키고 있는 인물로 비유했다. 불인지(不因地)란 '땅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지역색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와송은 지연은 물론 학연까지 벗어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불가에 ‘보살은 인지(因地)에서 닦을뿐 과지(果地)에 탐착(耽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뿌린대로 거두기에 거기에 열중할 뿐 그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도 내포되었다.

최융은 궁중생활을 하며 여러 부류의 인물들을 접했을 것이다. 깜냥도 안되면서 주제도 모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 아첨과 아부가 몸에 밴 자, 반면에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뽐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인물, 황제 곁에서 신임을 얻고 있지만 권력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겸손한 인물 등등.

황제 곁에서 타고난 성품 그대로 묵묵히 군주를 지켜주고 있는 인물을 와송에 비유한 최융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스스로 비하하진 않았다(妄自菲薄 망자비박)'.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도 실력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위정자 곁에는 와송과 같은 인물이 많아야 그 나라는 융성하고 국민들은 행복할 것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93, 102동 437호(신천동,더샵스타리버)
  • 대표전화 : 02-3775-4017
  • 팩스 : -
  • 베트남 총국 : 701, F7, tòa nhà Beautiful Saigon số 2 Nguyễn Khắc Viện, Phường Tân Phú, quận 7, TP.Hồ Chí Minh.
  • 베트남총국 전화 : +84 28 6270 1761
  • 법인명 : (주)인사이드비나
  • 제호 : 인사이드비나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16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14
  • 발행인 : 이현우
  • 편집인 : 장연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진
  • 인사이드비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사이드비나.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sidevina@insidevina.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