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9) 등화가친(燈火可親) 수불석권(手不釋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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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99) 등화가친(燈火可親) 수불석권(手不釋卷)
  • 이형로
  • 승인 2023.10.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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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계절 가을, 손에 책을 들자…학식•지혜 '괄목상대'
- 시간없어 책 못본다는 사람, 어떤 일에도 핑계대기 마련
燈火可親(등화가친)은 '등잔불을 가까이‘라는 말로 가을은 등불을 가까이하고 책읽기에 좋다는 의미이며, 수불석권(手不釋卷)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마는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 책읽기를 소홀히 했다면 이 좋은 계절 가을에만이라도 책을 가까이 해보자. (사진=인터넷 캡쳐)

한여름 뙤약볕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살구나무는 이미 나뭇잎이 가을바람에 흩어져 성긴지 오래, 단풍이 빠른 회잎나무와 화살나무는 벌써 빨간잎이 지고있다. 정동길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어 가고 성질 급한 녀석들은 벌써 한잎 두잎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을이 왔다는 전조(前兆)다. 

이런 자연현상을 보고 한나라 회남왕 유안(劉安, BC 179~122년)은 ‘嘗一臠味 知一鑊之味 懸羽與炭而知燥濕之氣 以小見大(상일련미 지일확지미 현우여탄이지조습지기 이소견대) 見一落葉而知歲之將暮 睹甁中之氷而知天下之寒 以近論遠(견일낙엽이지세지장모 도병중지빙이지천하지한 이근논원)‘이라고 표현했다.

‘고기 한점 맛보고 솥안의 전체 맛을 다알고, 깃털과 숯을 걸어놓고 방의 건습한 기운을 안다. 나뭇잎 하나 지는 것을 보고 한해가 저물어 간다는 걸 알고,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이제 추위가 온다는 걸 안다.’

사소한 것으로 큰 것까지 안다는 것이고, 일상에서 미래를 알 수있다는 말이다. 회남자 설산훈(說山訓)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나라때 어느 시인은 ‘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산승불해수갑자 일엽낙지천하, 산에 사는 중은 시간을 헤아리지 않아도, 낙엽 하나 지는 것으로 이제 가을인 것을 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이들 글에서 유래한 '일엽지추(一葉知秋)'란 성어는 '한잎 낙엽을 보고 가을이 곧 온다는 걸 안다'는 말로 '조그마한 끄트머리를 가지고 장차 올 일을 미리 짐작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온 가을에는 우리가 할 일도 많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놀기도 좋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천하가 감홍난자(酣紅爛紫)의 계절이니 여행 다니기도 좋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나라의 대문호이자 유학자인 한유(韓愈, 字는 退之, 768~824)는 같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자 친우인 유종원과 함께 종래의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변문(駢文)에 반대하고, 소박하나 자유로우며 성인의 도(道)를 담은 고문(古文)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장안성 남쪽으로 글공부하러 가는 아들 부(符)에게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란 시를 지어 주었다. 비교적 긴 시로 그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人不通古今(인불통고금, 사람으로서 과거•현재의 일에 통하지 않으면)
馬牛而襟裾(우마이금거, 소나 말에 옷을 입혀놓은 것)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 때는 가을이라 마침내 장마도 개어)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 다시 산뜻한 기운 들판에 가득하다)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이제 등불을 더 가까이 할 수 있으니)
簡編可舒卷(간편가서귄, 책을 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아들이 공부하러 가는 때는 마침 가을로 '등잔불을 가까이(燈火可親 등화가친)'하고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며 공부를 해야 과거와 현재 나아가서 미래까지 알 수 있고, 그래야 마소[馬牛]가 되지 않으니 이왕하는거 열심히 하라고 충고한다. 이 시는 배우면 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는 일종의 권학시(勸學詩)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여몽과 대도독 노숙의 일화에서 비롯된 청곡(晴谷) 박일규의 작품 ‘吳下阿蒙(오하아몽)과 刮目相對(괄목상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여몽과 대도독 노숙의 일화에서 비롯된 성어로, 오하아몽은 용맹하지만 학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여몽을 빗댄 말이며 괄목상대는 나중에 책을 가까이 한 여몽의 학식과 지혜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만큼 뛰어나게 됐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여몽(呂蒙)은 용맹한 장수였지만 학식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이에 황제 손권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여몽에게 자신도 책을 계속 읽고 있다고 하면서,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는 변방 전장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수불석권)', 위나라의 조조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즐겨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황제의 충고에 크게 깨우친 여몽은 전장에서 책을 늘 가까이하고 정진, 평소 그를 업신여기던 대도독 노숙을 경탄하게 만든다.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周瑜)의 병이 위독해지자, 그를 대신하기 위해 육구로 가던 노숙(魯肅)은 여몽의 군영에 들른다.

노숙은 군영에서 촉나라 명장 관우에 관한 대책을 논의하면서 여몽의 5가지 대책을 듣고는 ‘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於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 오위대제단유무략이 지어금자 학식영박 비부오하아몽)’이라고 탄복한다.

"나는 이제껏 자네를 무용과 군략만 있을 뿐이라 업신여겼는데, 이제는 학식도 뛰어나 예전 오군(吳郡)에 있을 때의 여몽이 아닐세"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여몽은 "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 사별삼일 즉갱괄목상대, 선비는 헤어진지 사흘이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합니다"라고 점잖게 대답했다. 그후 여몽은 용맹한 무장에서 지략까지 갖춘 지장(智將)이 되어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이 되었다.

이 일화에서 손에서 책을 놓지않는다는 '수불석권(手不釋卷)', 예전의 여몽처럼 무용은 있으나 학식이 없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인 '오하아몽(吳下阿蒙)', 학식이나 재주가 놀랄만큼 향상되었다는 뜻인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삼국지의 오지(吳志) 여몽전에 실려있는 이야기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입시나 자격시험 혹은 논문 등을 준비하며 바짝 공부해야하는게 아니라면, 구태어 중국 전국시대에 합종책을 주장한 소진(蘇秦)처럼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刺股 자고)', 혹은 초나라의 손경(孫敬)처럼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어달고(懸梁 현량)'까지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종이책이라야 읽는 맛이 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핸드폰에서 다운받는 전자책이면 어떠랴. 시나 소설, 고전이나 요즘 유행하는 '라노벨'(라이트 노벨 light novel의 줄임말) 또는 만화책이면 또 어떤가. 내용과 그것을 어떻게 소화시키냐가 중요하지 소재•장르•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다.

자세와 장소도 그리 중요치 않다. 지하철이나 화장실 등에서 앉아서, 서서 혹은 눕거나 심지어 물구나무 서서는 또 어떠랴. 요즘과 같이 바쁜 세상에 책을 본다는 자체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을이 지나면 곧 낙목한천(落木寒天) 겨울이다. 필자처럼 나이들어 눈이 어두워지면 집중력도 떨어져 책을 읽고 싶어도 지장이 많다. 바빠서 책 볼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하지 말자. 시간이 없어 책을 못본다는 사람은 어떤 일에도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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