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3) 천재일우(千載一遇), 일기일회(一期一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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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03) 천재일우(千載一遇), 일기일회(一期一會)
  • 이형로
  • 승인 2023.12.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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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에 한번 올만큼'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
- 큰 배움•깨달음 주는 모든 존재들과 만남의 순간, 귀하고 소중해
지당(芝堂) 이화자의 ‘千載一遇’(천재일우)와 장천(章川) 김성태의 ‘一期一會’(일기일회) . 천재일우는 ‘천년에 단 한번 만난다’는 것처럼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라는 의미로, 중국 동진(東晉)의 원굉(袁宏)이 펴낸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에서 유래했다. 일기일회는 '평생 단 한번의 만남'이라는 말로 평생 큰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모든 존재들과 만나는 순간이 모두 귀한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묘년 한해도 저물어간다. 어릴 때 할머니가 툭하면 ‘세월은 쏜살같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나이가 되니 실감이 난다. 아니, 요즘 이 복잡한 세상에서 세월은 쏜살이 아니라 미사일만큼이나 빨라진 것 같다.

올해는 가을 늦더위 때문인지 한동안 시간이 더디게 가는 듯했다. 얼마전 덕수궁 산책로를 걷는데 단풍이 들어도 시원찮을 계절에 철쭉꽃이 피어 있었다. 분명 올가을 날씨와 관계가 있으리라.

식물도감에서 철쭉은 4~5월에 꽃이 핀다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 그때 피지만, 요즘은 1~2월에도 활짝 펴 눈을 맞아가며 추위에 떨고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니 가을에 핀다고 특별할건 없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니 꽃들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꽃이 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식물체 내부의 신호전달과 일조량, 기온변화 등이라고 배웠다. 식물학자들은 식물 종류별로 꽃피는 시기가 다른 것은 온도 변화에 따라 식물체의 대사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식물체 안의 두가지 유전자(FCA와 FVE)가 대기온도를 감지, 개화시기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어쨌든 봄에 피어야 할 철쭉꽃이 늦가을이나 겨울에 눈까지 맞아가며 핀다는 것은 식물체 내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는 것은 식물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이 있을 때 꽃을 피워 자신의 DNA를 퍼뜨리고, 햇볕이 쨍쨍할 때 잎을 만들어 광합성을 해야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식물은 낮과 밤의 길이 변화를 인식해서 1년중 언제인지를 파악하는데 이러한 반응을 광주기성(光週期性, Photoperiodism)이라 한다.

연속되는 밤의 길이를 인식하는 식물의 기관은 잎이다. 잎에는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색소 단백질이 들어있다. 모든 잎을 제거한 식물은 광주기 실험에 반응하지 못하지만, 단 한장이라도 잎을 남겨둔 식물은 밤의 길이를 인지하고 적절한 시기에 꽃을 피운다. 

이때 잎에서 만들어낸 개화 유도 물질은 줄기에서 꽃자루까지 이동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 장일식물과 단일식물의 줄기를 접목시켜 두 식물에서 동시에 다른 종류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나무의 꽃과 잎이 떨어질 때는 줄기와 잎자루의 접점에 새로운 세포층을 만든다. 이를 떨켜(離層, Abscission layer)라 하는데 바로 리그닌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리그린이 낙화, 낙엽 그리고 낙과와 같은 분리나 이탈을 정확한 경계선에서 일어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줄기 끝에 리그닌막이 형성돼 꽃이나 잎을 떨군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떨어진 꽃과 낙엽의 끄트머리에만 리그닌이 묻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얼마전 때아니게 꽃을 피운 덕수궁의 철쭉과 아직도 잎을 매달고 있는 애기단풍. 가을 늦더위로 식물 안과 밖의 협력과 조화가 깨져 때를 놓친 결과이다. (사진=이형로)

중국 선종의 공안집인 벽암록(碧巖錄)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화두가 있다.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 이때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쪼으니 이것이 '줄(啐)'이다.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마주 쪼아 알껍질을 깨뜨려주니 이를 '탁(啄)'이라 한다.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 온전한 병아리로 부화할 수있다. (2021년 9월6일자 칼럼 52회 참조)

동진(東晉)의 원굉(袁宏, 328~376)은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에서 조조의 참모였던 순욱(荀彧)을 찬양하며 ‘夫未遇伯樂則 千載無一驥’(부미우백락즉 천재무일기,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천년이 지나도 천리마 한 필을 찾아내지 못한다)라고 했다. 천리마를 고르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주나라의 백락과 인연이 있고서야 비로소 천리마가 세상에 드러난다.

원굉은 이어서 ‘夫萬世一期 有生之通塗 千載一遇 賢智之嘉會 遇之不能無欣 喪之何無慨‘(부만세일기 유생지통도 천재일우 현지지가회 우지불능무흔 상지하무개)라고 했다. ’만년에 한번 기회가 온다는 것은 이 세상의 공통된 원칙이다. 천년에 한번 만남은 현군과 명신의 귀한 해후이다. 누구나 이와같은 기회를 기뻐하리니 기회를 잃는다면 개탄하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문선(文選)에 실려있는 이 글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란 뜻의 '천재일우(千載一遇)'와 '평생 단 한번의 만남'이란 의미의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일기(一期)'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한 주기를 말하며, '일회(一會)'의 회(會)는 법회와 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시간으로 여기서 '일회'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귀한 깨달음의 시간, 즉 깨달음을 주는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뜻이 된다.

일기일회는 평생 큰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모든 존재들과 만나는 순간이 내게 모두 귀한 것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16세기의 일본 다도가인 야마노우에 소우지(山上宗二, 1544~1590)에 의해 유행돼 지금까지도 다도계나 불가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있다.

그러나 어디 스승과 제자, 사람과 사람의 만남만 그러한가. 사람과 생물 혹은 무생물과의 만남 또한 귀중하다. 꽃과 벌나비의 만남, 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낙엽이 지는 그 원인과의 조우, 이 모든 것이 귀한 인연이지 않은가. 그런데 올가을에는 이런 만남이 뒤틀려서 단풍 색깔도 시원찮고, 눈바람을 맞고도 잎이 지지 않는 나무들이 꽤 어색하다. 

올해 단풍나무는 가을 늦더위에 휘둘려 제때 단풍이 들지못해 한겨울에도 나뭇가지에 애처롭게 매달려 말라가고 있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때처럼 안과 밖의 협력과 조화, 그것이 깨져버린 결과다. 

물론 나무는 올 한해가 일기(一期)는 아니고 내년에도 기회는 있겠지만, 올해의 기회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현상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안타깝다. 이런 원인 제공자는 누구인가. 이 또한 자연의 섭리라면 할 말은 없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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