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질이 나쁘면 반품을 하십시오."
1975년 경기도 성남시의 공터 앞에서 당시 세계최대 스키복 업체인 미국의 화이트스텍 케네디 회장이 한국인 청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6개월 동안 공장을 만들어서 옷을 납품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 청년을 믿어도 좋을까?'
"한번 믿고 맡겨주세요!" 마음에 들지않으면 반품할 수있는 조건이니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케네디 회장은 청년을 믿어보기로 하고 스키복 1만벌을 그 자리에서 주문했다.
아직 공장이 들어서기도 전에 세계적인 아웃도어 회사의 계약을 따낸 청년은 영원무역의 창업자 성기학 회장이었다. 그는 그날로 동료들과 밤샘 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이듬해 가을, 겨울시즌에 맞춰서 스키복 9600벌을 미국행 배에 실어 보냈다. 신생 의류업체가 고가품 해외 수주에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성기학 회장의 성공이 놀라운 이유는 당시만 해도 의류사업이 사양산업이라고 여겨져 꺼려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왜 하필 옷을 선택하느냐, 경쟁자도 많아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양산업이라며 주변에서는 말렸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 성기학 회장이 1974년 지인 2명과 함께 영원무역을 설립했던 때의 경영철학이었다. 회사이름 영원은 당시 최고의 인기 팝가수 클리프 리차드의 히트곡 ‘더영원스(The Young Ones)’에서 따왔다. 언제나 젊은 회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사명에 담은 것이다.

성기학은 서울대 무역학과에 다닐 당시 산악부원으로 활동했는데 그때부터 산악용품에 관심이 많았다. 창업초기 스키복 납품으로 시작해 1990년대 들어 노스페이스 등 다양한 해외 유명 브랜드 아웃도어 제품을 주문자상표 부착생산방식(OEM)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는 아웃도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웃도어 제품을 일상복 패션의 영역까지 넓히며 성장을 이끌었다. 용도•연령•성별에 따라 시장을 세분화하고 전문화해 시장자체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의 폭발적 성장을 바탕으로 영원무역은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 2023년 기준 베트남•방글라데시•중국•엘살바도르 등 세계 4개국에 생산거점을 뒀고 80여개 계열사에 거느린 현지 직원만 8만명에 가깝다. 전문기능성 소재, 무봉재 생산기술 등은 영원의 성장을 뒷받침한 혁신기술의 산물이었다.
영원무역의 2023년 매출은 3조6043억원, 영업이익은 6371억원으로 창업이래 근 50년동안 한해도 적자를 내지않고 흑자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는 살 수없다는 신념으로 일했다. 그리고 섬유가 사양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일생에 걸친 흑자경영으로 입증했다. 그는 관념에 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섬유산업은 하늘이 준 천직이었다.
|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
